에버랜드 장미꽃 축제를 함께 다녀온 이후
유정은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크럽 업무를 끝내고 점심식사를 다녀온 그녀.
동료가 유정을 급히 찾는다.
유정아~식사 갔을 때 병원으로 너를 찾는 전화가 왔었어. 전화번호 메모해 두었는데. 김재훈? 씨라고, 젊은 남자 목소리던데. 누구야~~~?
누구? 김재훈?.. 김재훈. 아~이제 생각났어.
그냥 우리 오빠 친구야. 얼마 전 휴가 때 문경 내려갔다가 만났던. 낚시를 하러 왔다나? 서울이 집이라고 오는 길에 나를 차로 태워준 것뿐야.
어머, 휴가 갔다가 남자를 그것도 오빠친구?
뭔가 촉이 오는데~솔직히 말해봐!
그런 거 아냐~그런 드라마틱한 사이였으면
이렇게 직장으로 연락을 했겠니? 개인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았겠지!
그랬어도 넌 숨겼을 것 같은데~
(조용히 속삭이며)
너 성형외과 이선생하고는
정리된 거야? 그 쓰레기 자식!
정리하고말고 할게 어딨어~
그 사람은 결국 유부남인데.
그 당시 유정은 성형외과 레지던트 4년 차와 사귀고 있었다. 본인을 솔로라고 말했고 그렇기에 연애가 시작될 수 있었다. 전혀 의심 없이 그를 만나면서 뜨겁게 연애하는 중이었다.
주중엔 종일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의사와 스크럽 간호사로 일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냈고 퇴근 후에는 둘만의 사랑으로 꽉 채운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주말만 되면 본가로 향하는 그가
월요일 출근 때까지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월요일인 그날은 그에게 주말 동안 잠수 타는 이유에 대해 꼭 물어보리라 다짐하고 휴게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같은 과 동료 레지던트와 그가 그곳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열려있는 문 틈으로 듣게 되었다.
형, 주말에 집 다녀왔어? 애들은 잘 지내지?
그럼, 주말마다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피곤하다.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형처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직장에서 연애도 하고 그 정도면 결혼도 할만할 거 아닌가?
야, 조용히 말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다는 게 쉬운 줄 알아?
순간 유정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심장소리가 너무 빠르고 컸는지 그녀의 귀로 진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문을 열까 말까, 이대로 물러나면 난 그가 유부남인걸 인정하면서 만나야 할 수도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는 이대로 끝일 텐데.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느 쪽이면 덜 힘든 선택인 걸까?'
그대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간 유정.
동시에 이선생과 유정의 눈이 마주치고 같이 있던 윤선생이 자리에서 급히 일어난다.
아 , 나 응급실 호출이 와서 먼저 나가봐야겠다.
이 선생~천천히 나와. 내가 대신 진료보고 있을게.
야! 어디가~! 저 자식!
난처한 듯 머리를 숙이더니 아무 말 없이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그를 향해 유정이 차분하게 말을 던진다.
그거였구나. 주말만 되면 잠수 타고 연락 안 되는 이유가. 네가 처음부터 나한테 들이댈 때 내가 물어봤었지, 유부남이 자꾸 꼬이는 게 싫어서
연애 안 하고 혼자 지내고 있었는데 너까지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그때 넌 솔로라고 당당하게 얘기했고
난 그걸 의심 없이 믿었기에 내 마음도 열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네가 제일 질 나쁜 놈이었을 줄이야. 결혼했다고 정직하게 얘기만 했어도 나한테 추파 던지던 유부남 의사 새끼들 지겨워서라도 너와의 시작을 엄두도 안 냈을 거야. 그나마 오늘 사실을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이야. 다음 달 시골집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 가기로 했었는데 그전에 알아서. 안 그래?
그동안 즐거웠어. 더 곤란한 상황이 오기 전에
네가 그런 의사새끼란 거 알게 해 주어서.
앞으로 어디서도 나 아는 척하지 마!이 개자식.
뒤돌아서 문을 '쾅'닫고 나오는 그녀의 눈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