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음 잔을 채워주며 유정이 말을 이어간다.
음... 어쩌면 지금 하는 얘기가 저녁식사 거절에 대한 변명이 될까?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아친 하루였어 오늘이. 경력이 쌓여가면 이런 스트레스 따위 가볍게 웃으면서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해도 막상 닥치면 안 될 때가 많더라고.
가볍게 잔을 비운 뒤, 대화를 이어간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비워내고 싶었어. 여긴 일 년 전 승진에서 물먹은 날 발견한, 내 소중한 아지트이자 혼술집이라 이런 날은 더 찾게 되는 것 같아.
난 직장과 관련된 뭐든, 일이든 사람이든 퇴근과 동시에 놔 버리거든. 밖으로 끌고 나오지 않아.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그게 편하더라고. 단지 그 이유였을 뿐, 지한이가 싫거나 거부감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마음에 담지 않았으면 해.
어느새 다시 채워진 두 사람의 잔이 동시에 비워진다.
팀장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어요. 저의 행동에 대해 다그치기보다는 공감해 주셔서 한번 놀라고, 팀장님의 돌아가신 아버님 얘기로 제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는 모습에 두 번 놀랐어요. 어디에서도 팀장님처럼 후배를 위한 배려가 넘치시는 분은 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더 컸어요. 제 태도가 반드시 바뀌어야 할 이유가 생겼달까요.
그렇게 얘기해 주니 고마워. 앞으로 직장에서 잘해 나갈 거라 믿어. 지한이 내면아이의 쌓인 감정이 일할 때 영향 주지 않도록 말이야.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 아쉽지만
내 조용한 아지트가 지한이에게 들켜 버렸네.
지한을 향해 눈을 찡긋한다.
저도 들킨걸요? 제 공간이기도 했으니까요.
술잔으로 눈을 돌리는 유정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팀장님이 이곳을 먼저 알았고 인연을 시작했지만 저에게도 여긴 같은 의미였으니까요.
사케에서의 시공간을 팀장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 는 게 너무 신기할 뿐이에요.
어쩌면 한 번은 꼭 만났을 서로의 시간 교차점 이었을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잖아요.
그 순간, 지한과 유정의 두 눈이 마주치고
작은 사케 잔을 만지작 거리던 유정의 손 위에 알수없는 끌림의 힘으로 당겨진 지한의 손이 살며시 포개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