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과 지한이야기-7

그들의 시공간 3

서로의 손이 닿은 그 순간, 유정이 지한의 손아래 있던 손을 살며시 뺀다. 둘의 복잡한 감정이 서로를 마주 보는 눈으로 읽힌다. 어색함과 침묵이 동시에 그들의 주위를 감싸고 주인이 가벼운 안주를 내어옴과 동시에 얽혀있던 분위기는 잠시 내려둔다.

두 분이 같은 병원, 같은 팀에서 근무를 하시다니 대단한 인연이네요. 이 친구가 이사 오면서 여길 자주 오는데도 유정 씨와 단 한 번을 마주친 적이 없다가 오늘 이렇게 같은 시간에 만나게 된 것도 신기하죠. 

두 사람의 비어있던 잔에 주인이 사케를 채워준다.

유정은 두 손으로 잔을 들며

제가 자주 못 오는 편이라 겹치는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만의 아지트에서 마주치니까 뭔가 비밀스럽던  공간을 빼앗긴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유정이 얼굴을 돌려 지한을 바라보는 사이 동시에 잔을 들며 유정을 바라본다. 다시금 복잡하게 얽힐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를 가볍게 해 보려 지한을 향해 연한 미소로 바라보는 유정.

두 분이 이제 자주 오면 되죠~ 팀얘기도 자주 하고

혼술 친구도하고 밥친구도하고요, 물론 유정 씨가 시간이 된다면요.

인상 좋은 주인의 부드러운 웃음으로 둘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그런 주인을 향해 그녀도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사장님은 단골 많이 만들어서 좋고 저희는 친구 돼서 좋고요? 그러기엔 너무 엄마, 아들이지 않아요? 나이차를 넘어 세대를 거슬러야 해요.

지한이 가볍게 잔을 비우고 두 사람의 대화에 말을 더해간다.

사장님, 팀장님은 친구라는 의미에 나이나 세대가 중요하다고 보세요? 대화에 코드나 생각이 맞다면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거든요, 저는.

그래서 휴대폰에 전화번호도 사회적 직급이나 나이, 관계를 떠나 모두 이름으로만 저장을 해요. 심지어 부모님도 엄마, 아빠가 아닌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게 된 건 모든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어디에도 차별두지 않고 수평적으로 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지한은 의식이 깨어나고 성장해 가던  사춘기 때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인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표현해 왔다. 어머니에게 어디 여자가 여자가 하면서 무시하던, 누나들에게 여자가 어딜 하면서 차별하던, 아버지보다 약하고 힘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 무시와 차별을 일삼던 아버지의 부당한 행동에 대한 분노를 터뜨려오다 어머니의 선택에 의한 독립을 한 그였다. 그 후로 아버지와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지한. 아버지가 보여준, 머리에 심어준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말과 행동들을 언제나 거부했고 경멸했다.

그런 아버지와는 다름을, 절대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의식적으로 더 보려 주려는 그였지만

지신도 몰랐던 무의식의 내면아이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 연애를 시작했던 그는 그토록 혐오했던 아버지의 말투와 행동이 자신에게도

어느 순간 스며들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스스로에게 연애단절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