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녀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유부남인 그와의 관계를 끝낸 일을 떠올리자 유정은 몸서리가 쳐진다.
동료가 그 일에 대해서 먼저 운을 떼자,
"남에게 거짓과 상처를 준 사람은 더한 무언가로 돌려받는데. 그게 뭐가 되었든 난 그 말을 믿어.
그리고 이젠 지나간 일이고 병원에서 마주쳐도
피해 다녀야 할 사람은 그 자식일걸?
잠시 말을 돌리며,
"그런데 전화 왔다던, 번호를 남겼어?"
"응~그런데 세상 불공평 하지 않아? 넌 혼자이고 싶어도 세상 남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데 나처럼 모태솔로는 어쩌라고. 나도 좀 엮어주라~"
"그거 오해소지가 있는 멘트인데, 나 예민하게 안 받아들인다~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지?"
"그럼~내가 이렇게 소개해 달라고 너한테 부탁하는 건데 굳이 무슨 다른 뜻이 있겠니? 너 탈의장 문에 메모지 부쳐 두었어, 그 번호."라며 동료는 다음일을 위해 유닛을 옮겨간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교대근무자들이 출근하고 인계가 마무리되는 파트 먼저 퇴근을 한다.
탈의실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온 유정의 한 손에 접힌 메모지가 보인다.
휴대폰을 꺼내 적혀있는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몇 번 울리자 바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 재훈 임을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잘 지냈어? 오빠, 나 유정이야."
"오랜만이야~너도 잘 지냈지? 난 또 연락 안 오는 줄 알고. 긴장했잖아"
"김재훈이라는 사람이 유정이를 찾는다 수술실에 아주 광고를 해요. 점심식사하고 왔더니 모르는 사람이 없어. 누구냐고 다들 물어보고. 그러니 연락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랬어? 번호 남긴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연락이 없잖아~ 차인 건가...라고 혼자 생각했지. 그런 건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다."
평소보다 톤이 한층 높아진 밝은 그의 목소리다.
"내가 하던 일 중간에 나와서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잖아. 그리고 오빠, 수술실에 인원이 몇 명인데 누가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고 병원으로 전화를 직접 하면 내 입장이 곤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아~그건 미안. 사진 찍은 거 인화했는데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어.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그때 알려준 병원 이름만 생각이 나더라고. 병원으로 무작정 전화해서 수술실로 돌려 달라고. 너랑 통화 원한다고 했더니 동료라고 하면서 친절하게 응대해 주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우리 오빠한테 연락해서 물어봐도 되는 거였잖아"
"치원이가 너랑 따로 연락하는 거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세상 모든 오빠들은 여동생이 자기 친구랑 만나는 거 반대하거든. 물론 특별히 잘난 경우는 빼고 말이지만."
"그럼 오빠는 특별히 잘난 건 아니라는 거네?"
"그렇게 되나? 하긴 그랬으면 내가 그다음 날, 아니 우리 같이 서울 올라오던 날 네 전화번호 물어보고 내 번호도 알려주고 했겠지~"
"바로 수긍하니까 재미없다. 겸손한 거야, 진지한 거야, 정직한 거야, 자신감이 없는 거야~"
"다 맞는 거 같은데? 아무튼 연락이 되어서 반갑다.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말이야. 혼자 볼 수가 있어야지.
꼭 널 만나서 사진 함께 보면서 얘기도 하고 전해 주고도 싶었어."
"그래서 그날 사진 찍은 거구나? 사진 핑계로 또 만나려고"
"꼭 그런 건 아녔는데,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혹시 퇴근하고 오늘 시간 어때~너희 병원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가까이 있거든"
"나 지금 퇴근하는 길이야. 버스 탔고~"
"그럼 버스 내리는 정류장 알려줄래? 거기서 픽업할게. 너만 괜찮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