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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끌림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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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Sep 22. 2024

유정과 지한이야기-3

아버지라는 의미.

둘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공간.

눈물을 머금은 유정과 그녀를 바라보는 지한의 눈빛이 동시에 겹쳐지면서 침묵이 흐른다.


 드니까 눈물 많아지는 것 같아...

면담 이런 분위기로 만들면 안 되는 건데 미안해. 지한이 아버지 얘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서 말이야 살아계실 때 나의 아버지가.


휴게실 창너머 보이는 바깥풍경으로 눈길을 돌리 유정.


경상도 남자가 가진 무뚝뚝함, 과묵함, 자식들에게 어떤 살가운 표현도 할 줄 모르시 분. 산에서 일을 하시다 허리를 다치평생을 엄마에게 경제적 부담을 스란히 지우.

어릴 적 나의 눈에 아빠는 왜 집에만 있지? 친구들 아빠와는 달랐으니까. 사춘기 때는 그런 무능력한 아빠가 한심해 보였어.

종일 집에서 엄마 대신 밥, 반찬이나 해주고 말도 몇 마디 안 해, 표현도 없어, 늘 무표정으로 자식들을 대했으니까.

항상 데면데면 그렇게 지내다가 내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아빠가 묻어 두었던 속마음을 그제야 털어놓으셨어. 사고가 있었던 날로부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무능력함 때문에, 가족들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점점 삶이 무기력해우울했고 걸 다 표현할 수 조차  평생을 미안한 마음으살아왔다고.


잠시 눈물을 닦아낸 유정.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한에게로 눈을 돌리며 말을 이어간다.


그때 알았어~내 자식만큼은 더 잘되기를,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신이 할 수 있는 제일 익숙한 방법으로 표현했던 거였구나 라는걸.

그 모습이 자식에게는 좋게도 아니게도 보일 수는 있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불신이 일을 하는데 겹쳐져서 지장을 준다면 개인적으로  잃는 게 많잖아. 지금은 그런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렇게 밖엔 표현하는 법을  모르셨던 분이었기에 오히려 짠하생각하면 어떨까 해. 

그렇게 아빠가 싫었던 순간들이 이젠 돌아가시기 전 자주 해주셨던 궁중떡볶이  그립고 말없이 가만히 바라봐주던 얼굴도 너무 보고 싶어.


지한이 고개를 들어 유정과 눈을 맞춘다.


팀장님, 저를 위해 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가족얘기도 먼저 꺼내어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이렇게까지

컸나 봐요. 친할아버지도 그랬던 분이셨어요. 아버지도 아들로서 그대로 보고  배우셨던 것 같아요. 아는 데로 배운 데로 저한테 하셨던 것뿐.

팀장님 말씀대로 그런 아버지를 이제는 좀 더 이해해 보려 해 볼게요. 처치할 때도 비슷한 연배 환자분들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제 개인적인 감정을 넣어서 주관적으로 대하지 않을게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팀장님.

저 때문에 눈물까지 보이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지한선생님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또 더 이상 다른 변명하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했으니 난 그걸로 감사해요. 언제든 처치하면서 환자들과의 소통에서 문제든 어려운 점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같이 풀어 나가도록 해요, 우리


네~팀장님.


면담실을 나오면서 유정이 지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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