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도착한 집.
여느 때처럼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나.
작은아이가 다가와 조용히 하는 말,
"엄마, 아까 아빠한테 연락 와서 통화했어"
"응? 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 아빠가?
연락 한번 한적 없는데"
"전화번호에 애들 아빠라고 되어있던데?"
"이건 무슨 말이야~네 휴대폰이 엄마이름으로 되어있어도 아빠가 번호를 알아야 연락을 할 수 있는 거야. 번호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지? 언니가 알려주진 않았을 텐데"
"엄마 사실은... 언니가 아빠한테 문자 오면 할 말도 없고 답장하기 싫다고 하니까 제가 궁금하기도 해서 엄마폰에 저장되어 있던 아빠번호로 연락을 했어요"
"....."
순간 속마음이 튀어나올 뻔한 걸 참았다.
10여 년 전,
본인의 유책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이혼을 요구하던 남자, 아이들은 딸이니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양육권은 물론 친권도 다 가져가라던 남자. 아빠가 아닌 생물학적 남자인 사람? 아닌 남자를 아빠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나의 아이들.
3년 전 까지는 큰아이가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해서 추석이나 설명절에는 친할머니 집으로 두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흘러 큰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엄마, 저 이제 아빠 만나기 싫어요. 명절 때 할머니집 가는 것도 불편하고 안 갈래요."
"네 뜻이 중요한 거야. 안 가고 싶고 만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 명절 때 무슨 일 있었어?"
"명절에 가면 반찬도 맛난 거 해주셨는데 이번 설날엔 고기반찬도 하나 없이 떡국에 햄 반찬만 주셨어. 할머니집에서 하숙하는 대학생 언니들도 같이 있으니까 불편하고. 아빠는 우리 이제 애기도 아닌데 맨날 과자박스만 사주고. 밥 먹으면서 할 얘기도 없고 아빠가 물어보는 것도 매번 똑같아서 대답하기 싫어요."
아이들을 마음에서 내려 놓았때의 시간에서 그 사람 시간도 멈추었나 보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성장하며 자아형성이 되어갔고 가족이라는 구성원과 그 역할들을 인지하기 시작한때부터 다른 가정과는 다른 헤어진 아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물어왔다.
"엄마, 아빠는 우리 용돈 안 줘요? 양육비도 주는 거라던데. 아빠도 보내주는 거예요?"
"아니, 이혼할 때 양육비 준다고는 했지만 받은 적은 없어. 강제로 받아내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그것보다 엄마는 양육비 때문에 너희 아빠를 다시 만나야 한다거나 연락하는 것 안 하고 싶어.
엄마월수입으로 너희들 키우는 거 여유롭지는 않아도 마음은 편해. 기댈 곳도 없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엄마혼자서 너무 힘드니까 그렇죠. 우리 이제 어린애 아닌데 일 년에 고작 몇 번 연락해서 친할머니 만나라 하고 과자만 손에 쥐어주고 학원비도 안 해주면서 학원 꼭 다니라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러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너를 낳아준 아빠일 뿐이야. 지금은 가족이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남한테는 그런 거 기대하지 않잖아. 섭섭하겠지만 경제적 지원은 아빠가 알아서 해주지 않는 이상 바라지말자.
그래야 홀로 설 수 있어."
큰 아이는 자신을 낳아준 아빠라는 존재에 무척이나 실망하고 화가 난 표정이었다.
작은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얘기해. 엄마는 만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아. 네가 아빠나 친할머니 보고 싶으면 날짜정해서 만나게 해 줄게."
"아니에요 엄마, 보고 싶어서 연락한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연락한 거예요. 나한테도 아빠가 있구나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이젠 안 할 거예요."
작은아이의 말에 순간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 상황을
감성적으로만 대처할 수 없었기에 꼭 안아 주었다.
작은아이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