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멈춘 자리에
가을이 멈춘 자리에
유니
가을이 멈춘 자리엔
온갖 아름다운 빛들이 어우러져
추억들을 속삭인다
바람이 나뭇결 사이를 스치면
붉은 잎 한 장이 천천히 떠 오른다
그러고는 사뿐히 호숫가 물빛에 내려앉는다
한 해의 끝자락
햇살은 금빛 실로 남이섬을 꿰매고
걷는 발자국마다 가을이 부서진다
떠나온 마음에도 단풍이 든다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하나둘 바람에 흩어진다
선선한 남이섬의 바람이
노란 잎을 스치니 서서히 날아 오른 잎
붉은 잎 곁에 다가가 앉는다
호숫가 물결이 잔잔히 흔들거리자
햇살은 단풍들을 엮어
우리에게 가을의 옷을 지어 준다
걷는 길 걸음걸음에
바람이 살짝쿵 오감을 스치니
내 마음도 이내 그 길 따라 물든다
누군가의 미소 같던 그날의 햇살은
남이섬의 11월 속에
조용히 흘러간다
단풍들 사이로 하아얀 연기 한 줄
초가지붕을 뚫고 오르니
가마솥 찐빵 내음 남이섬을 채우고
거리거리에 선 눈사람들은
이른 겨울을 재촉하 듯
그 자태 뽐내 보는데
반가이 만난 가을은
뭐가 그리 바쁜지
벌써 이별 인사를 하려 하네
짧고도 화려한 계절
그런 너이기에
더욱 반갑고 또 그리운 게지
늦가을 노을인가 초겨울 새벽인가
매서워진 바람은 멈춰 선 가을에게
쓸쓸함으로 스며든다
찬란한 단풍 빛과 따사로운 햇살
차가운 바람과 낙엽이 공존하는
가을이 멈춰 선 어느 날
너도 나도 우리도
이 가을에 멈춰진 채
아름답지만 쓸쓸한 추억을 가득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