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우치구 스페셜리스트’ 리갱B(리갱비)
사랑하는 것들을 담아 필명을 지었다. 연습실 이름 첫 글자, 작은 생명체의 이름 한 글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작곡가의 일치하는 이니셜, 덤으로 나의 성격상 항상 플랜 B를 염두에 두는 그 의미까지 꾹꾹 눌러 담았지만 어딘가 이름이 착 붙지 않고 설렁하게 지은 것 같은 이름이라 아주 마음에 든다. 나의 연습실 또한 그러하다. 작고 소중한 음악 연습실. 이 근방에서 가장 일찍 불이 켜지고 늦게까지 켜져 있는 연습실. 눈에 잘 띄지 않고 야물딱지지 못한 셀프 인테리어로 허술해 보이며 낡고 지쳐있는 공간. 나는 늘 이곳을 잃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가족 중 비교적 크고 통통하며 뼈대가 굵직해 별명이 소였다. 할머니께서 붙여주신 별명이었는데 그만큼 누렇고 커다란 몸에 소의 동그란 아련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였던 것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한다. 가장 싫어했던 동화책은 ‘소가 된 아이’. 자전적 소설이 될까 봐 책등을 돌려 안 보이게 책장에 꽂았다.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친구의 모습을 동경하여 시작한 음악은 허영을 욱여넣은 가장 빛바랜 결정체다. 음악에서 ‘스페셜리스트’는 어떤 작곡가의 해석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낸 연주자에 대한 찬사로 주로 쓰인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를 꿈꿨지만 콩쿨 수상 경력 전무, 탄탄한 엘리트 코스의 샛길로도 걸어보지 못했기에 감히 붙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붙여보고 싶어서 붙였다.
가장 소중한 재산을 잃는다는 것, 잃었던 소는 결국 나였음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이 서사의 끝은 음악으로 인해 나를 잃었지만 결국 음악으로 인해 나를 되찾았다는 숭고한 드라마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