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다 서다 그리고 가다

프롤로그

by 고율리


KakaoTalk_20241122_144857267.jpg 고슴도치 룰루

어느 날, 작은 고슴도치 사진 한 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안에서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고슴도치 룰루”다.
고슴도치 룰루는 겁이 많고 느리며, 화를 참아 털이 붉어진 고슴도치다. 상처받기 싫어 가시부터 세우는 모습이 꼭 나를 닮았다.

"느려도 괜찮아. 가다 서다 해도 괜찮아."

룰루를 그리며 나는 처음으로 나의 느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지 어느덧 16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내놓은 책은 없다. 동화작가 교실에 다니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며 나름 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낙방이었다. 생계가 우선이었고, 꿈은 늘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향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수없이 멈춰 섰다.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 내 그림책은 다음 생에나 내자.” 그렇게 포기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작년에 용기를 내어 인스타그램 1일 1 그림 챌린지에 도전했고 처음으로 내 그림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 장씩 그리다 보니 어느새 100장이 넘는 그림이 쌓였다.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 주변의 응원이 있었지만, 과거의 실패와 두려움이 또다시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인생은 ‘가다 서다’의 반복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정신없이 달리던 순간에도 언젠가는 멈춰 서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일이 많을 때는 쉼 없이 달리지만, 여러 이유로 멈춰 설 때가 있다. 이제는 멈춤을 부정이 아니라 휴식으로, 조급함 대신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과거 멈춰 섰던 그 시간을 원동력으로 삼아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글과 그림이 꿈을 향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