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100일 성공을 목표로, 큰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키만큼 큰 프레임에
한지를 고정시키고,
모사를 시작한다.
전체 구도를 잡고,
세밀 붓을 사용하여
그림을 똑같이 그려야 한다.
이것은 대학교 1학년 1학기때의 그림 이야기다.
사실 모사라 했지만, 어떤 이는 휘리릭 자기만의 스타일로 여러 장을 그리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난 똑같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일단 아무 생각 없이 그리기만 하면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 갔다. 똑같이만 따라 그린다면, 나는 그 천재화가만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었고, 나도 덩달아 천재화가가 되어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다 보니, 내가 세밀화를 좋아하고, 세밀화 실력이 남들보다 좋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렇게 몇 달을 한 그림에 매달려서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나서,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 초등 5학년 때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똑같이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사물을 관찰하라는 것이었고, 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가서 자기의 그림을 수시로 확인하며 전체를 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전체의 그림의 조화를 보라는 의미도 포함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 그림을 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처음 5학년때는 4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기에, 그림이 내 눈에 한 번에 들어왔고, 자리에 일어나서 확인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키만큼의 그림을 그리고, 나의 그림을 보려면, 1m, 2m, …. 뒤로 가서 봐야 내 그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또한, 모사를 할 경우엔, 그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선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그 디테일한 부분이 전체의 그림의 흐름을 깨트리는 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멀리서 보다보면, 수정해야 할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는 지도 보였다. 그리고 옆에 동시에 보이는 다른 친구들의 그림과도 비교하며 나의 속도, 나의 기준도 조정할 수 있었다.
이렇듯, 큰 그림을 본다는 것은, 사물에 가까이 앉아 자세하게 그리는 동시에, 멀리서 전체의 그림을 균형을 보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전시회에 내놓은 그림은, 옆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 내 눈 바로 앞에 있던 커다란 그림은 뒤로 점점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내가 몇 시간 동안 노력하며 그렸던 디테일한 부분은 하나의 점으로만 보일정도였다. 참 허무하기도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한 번의 붓터치로 휙하니 정성 없이 완성했다면 그곳은 분명 전체의 그림에서 뻥 뚫린 구멍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는 참 또다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잠도 줄여가며 노력하지만, 한 달의 기간, 1년의 기간에서 돌아보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하루이다. 하지만, 그 하루를 세밀화를 그릴때, 정성을 다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휘리릭 보내 버렸다면, 전체 나의 인생의 구멍이 될 것이기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의 구멍을 만든다면, 이는 나중에 어떻게 메꿀 수 있을까.
나도 한때는 무기력함에 매일매일을 낭비하며 살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때가 가장 후회되는 때다.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닌 정체된, 아니 땅으로 꺼져 나의 삶에서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 난 루틴을 제대로(?)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다시 그림으로 그려 세상에 내놓는 기분이다. 하루종일 바쁜 날이면 루틴을 하나도 못하고 하루를 휘리릭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전에 항상 루틴을 마무리하고 잤다.
내가 정해놓은 루틴은 나의 기본을 만드는 것이기에, 내 뼈대를 그리는 것과 같다. 아무리 이쁘게 나의 모습을 그린다고 해도, 뼈대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스르르르 흐물흐물 내려앉을 테니 말이다.
소로는 인생은 하나하나의 행위를 점점이 이은 선이며, 인생은 이 사소한 일들의 최종적인 손익 결산이라 했다. 또한 작은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어 썼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와 능력이 결정된다 했다. (주1)
소로뿐만 아니라, 내가 읽은 다른 몇 권의 책에도 매일매일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루틴, 습관 길들이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루틴이라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일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지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다면, 이는 모사를 하며 천재화가를 따라 하며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같았다. 그저 하라는 대로 할 뿐이었는데, 지금 나는 신기하게도 나의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매일매일 하다 보니, 소로가 말한 것처럼 나의 능력이 점점 커지고,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것도 쥐어지고, 책임이라는 것도 느껴야 하는 위치로 와있게 됐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을 한 것이었다.
물론, 내가 매일 하는 루틴은, 그 집중도나 정성이 매일매일 다르다. 하지만, 루틴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세밀화를 그리면서 한 번의 붓터치를 했냐 안 했냐의 문제와 같다. 그림에서 하나하나 붓터치를 쌓는 만큼 그 그림은 깊어진다. 내 인생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연하게 그리는 붓터치와 같은 루틴일지라도 매일매일 쌓이다 보면 뼈대의 선이 보일 만큼 진해져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중심의 뼈대를 그리고,
팔다리를 그리고,
나의 머리도 그리고.
이렇게 그리다 보면
어느새 내 모습 전체가 그려지고,
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의 정신도 채워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매일 루틴을 하며,
성공이라는 단어를 적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려 노력한다.
(주1) <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갈라파고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