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대하는 자세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후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계절 독감과 감기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유행을 따라야 하는 것 마냥 나 또한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
본래 병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나는 집에 남아있는 상비약을 먹으며 지냈다. 크게 소용이 없던 건지 감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병원을 좀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나, 절대 병원을 가지 않았다. 병원을 가지 않는 데에는 딱히 큰 이유가 없다. 병원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추운 날씨에 집에서 꽤 떨어진 병원까지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불을 꽁꽁 싸매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다.
덕분에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질 감기를 거의 일주일 동안 달고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감기가 사그라들 때,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눈이 아주 조금, 바람이 휑하고 불면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을 만큼 쌓여있었다.
가끔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카페에서 일을 할 때나, 11월 즈음에 봤던 것 같은데 아주 조금이지만 쌓인 것을 보니 진짜 눈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쌓인 눈을 신발로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를 좋아하기에, 휘날리는 자그마한 눈발을 잡아보고 싶기에, 무엇보다 쨍쨍한 햇빛 속에서 녹지 않고 내려오는 눈이 너무 소중했기에 세수도 안 한 채로 밖으로 나갔다.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눈이 쌓이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밟아보는 눈은 정말 깨끗했다. 이렇게 아름답지만 웬만한 추위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더운 여름에 눈이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그 눈을 내가 본 첫눈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까지 얕은 내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 흔적은 지워지겠지만, 내가 계속 남기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무도 알지 못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추워지고 눈이 더 내리면 그때도 흔적을 계속 남길까 한다. 내가 알아주고 내가 믿으니까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 번 눈이 올 때까지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