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받침
대학 시절에 알게 된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안경을 끼고 무서운 눈초리로 날 맞이했다.
입자물리학을 하는 선배였다.
술자리에 가거나 담배를 피울 때 초소에서
같이 근무를 할 때도
물리 이야기를 하던 선임이었다.
내가 몇 년 동안 쌓아 올린 공부의 양이 한순간에
선배 앞에서 무너졌다.
무너지는 순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돼서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선배는 박사 논문 앞에서 무너졌다.
잠깐 갈피를 못 잡는 선배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처음 봤을 때의 매서운 눈초리는 탁해졌지만
어느새 졸업 논문은 완성되었다.
난 그 논문을 받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의 긴 시간이 얼마나 형을 괴롭혔을까..
우스갯소리로 라면 받침대로 쓴다는 논문이라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받침대 위엔 그 형이
우뚝 솟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