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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발 Sep 24. 2024

엄마, 아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항상 함께 해주는 사람, 진짜 내 편이 여기에 있었다.

빛바랜 편지함을 열어 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 아빠는 건강해요. 밥을 잘 먹거든요. 우리 아빠는요, 동생 하고도 잘 놀아줘요. 밤에 안아 주고 놀아 주거든요. 우리 아빠를 하늘까지 사랑해요. 우리 아빠 멋쟁이!"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쓴 편지다. 소중한 아이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날 때나, 기분이 좋거나, 필요할 때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집안일을 챙겼다. 하지만, 아내, 엄마는 달랐다. 항상 아이들과 내 곁에 있어 주었고, 아이들 교육, 가정 내 크고 작은 일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엄마는, 아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면 아내와 다툰 적도 많았다. 직장과 일,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져왔다. 참 못난 사람이었다.


아내는 평소에는 별로 표현을 잘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말씨가 몸에 베인 사람이고, 곁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무심한 듯 이야기를 들어주고, 살포시 미소를 건네주고,  소리 없이 베풀고,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혼 후 회사를 졸업할 때까지 음식 만들기, 빨래, 쓰레기  버리기,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아내가 회사일도 바쁜데 집안일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새벽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면 잘 다려진 와이셔츠 한벌, 새벽잠 깨어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그 친구의 사랑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출근길 현관 앞에 놓인 빛나는 구두,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 친구의 사랑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식탁에 맛깔스럽게 차려진 밥상, 정성스레 준비한 그 친구의 사랑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새벽녘까지 가족들을 위해 열린 창문을 닫고, 이부자리를 다독거리는 그 친구의 사랑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32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말을 건넨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무탈하게 잘 내려와서 감사해요. 덕분에 아이들도 잘 자라고 우리도 잘 살아왔잖아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좀 쉬어요" 울컥, 먹먹해졌다. 


지나고 보니 다 덕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사랑이고, 기쁨이었다. 때론,  아픔이고, 고통이라고 느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삶을 살찌웠고 행복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립고, 아리다. 궂은일, 좋은 일 항상 함께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진짜 내 편이 여기에 있었다.  


어느 퀴즈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에게 나이 들면 꼭 필요한 다섯 가지를 물었는데 부인, 아내, 집사람, 와이프, 마누라였다고 한다.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찾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설거지와 집 청소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가족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영화도 본다.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 땅 우리 먹거리 여행도 다니고,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는 카톡방도 개설했다. 


엄마가, 아내가 늘 그 자리에 있듯이, 나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야겠다. 있을 때 더 사랑해야지. 할 수 있을 때 더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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