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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 May 03. 2024

어서 와, 완벽남 7년 짝사랑은 처음이지?

완벽녀가 완벽남을 짝사랑한 사건

사귈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뱉어 본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내가 원래 고백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유독 한 사람을 꽤 오랫동안 좋아하게 되자 고백을 하지 않으면 정말 못 참을 것만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 그냥 고백하기로 한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내 사랑이 시작된 계기를 얘기해 주겠다.


중학교 1학년, 중학교에 갓 입학했으니 중학교 첫 번째 반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생각돼서 반 배정 표를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는데, 유독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 이름은 내가 7년간 짝사랑했던 우리 초등학교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원래 인기남. 이렇게 딱 단정을 지으면 보통 성격이 안 좋다거나, 단점이 치명적이거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던가 그런 일들이 좀 많은데 이 아이는 달랐다. 성격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얼굴도 잘생겼고, 운동도 잘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편이고, 기타도 잘 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아 참고로, 나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고 비율도 나름 좋고 키도 크면서 밝고 착한 성격과 폭넓은 재능으로 완벽녀라고 불렸다. 그래서 나도 걔만큼 인기가 꽤 없진 않았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를 그 어린 초등학생 아이들이 왜 안 좋아했겠는가.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내가 기억력이 정말 좋은 편이고(정확히는 상위 2%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머지 아이들 얼굴은 중학교 때까지 알고 지내던 친구들 아니면 다 까먹고 모르고 있었는데, 걔는 유독 내 눈에 너무 띄었는지 7년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걔 보려고 엄청 돌아다니고 매일 걔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고 잊어 보려고 다른 사람을 눈에 들여 최선을 다해 봐도 그는 한참을 못 본 사람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너무 여려 무슨 일만 있어도 매일 울던 나를 당황하면서도 챙겨 주고, 사소한 일을 도와준 건데도 무조건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해 주는 아이였는데, 그런 인기남이 내 눈에 다시 등장했던 건 졸업식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나비~"

이 가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 근데 내가 그를 본 게 졸업식 공연은 맞는데, 노래를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나는 소리는 기타 소리밖에 없다. 우리 학교에는 그 당시 기타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히 그 무대를 보고 그 애한테 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나일 줄은 몰랐다. 그 이후로 나는 그가 처음으로 내 남자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매일 친구들한테 은근슬쩍 그 애 얘기를 꺼내면서 공연 멋있지 않았냐는 둥 여러 이야기를 돌려 돌려 그의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짝사랑을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지만, 너무 순수할 당시의 이야기라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짝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그 인기남이 우리 반이면서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서 같은 반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하지만 나는 티를 내지는 못했다. 그냥 좋은 애다, 나름 잘생긴 편인 것 같다, 착하다 등 칭찬을 은은하게 흘리고 다녔을 뿐. 더군다나 학기 초부터 내가 그 아이와 했던 건 놀리기, 물건 뺏고 안 주기, 둘이 엮이기. 이 세 개였다. 그냥 서로 장난치기 시작하니까 엮였고, 나름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내가 행복하게 웃으면서 그 아이의 필통을 뺏고 안 돌려주고는 쉬는 시간이 끝나면 돌려주는 등의 심하지 않은 장난들을 본 이들이 모두 우리 둘에 집중했다. 물론 나는 전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할 리도 없을 것이고, 내가 제대로 좋아한 지도 오래 안 됐고, 예전의 모든 기억들을 꺼내 봐도 이렇게까지 좋아한 사람이 나를 같이 좋아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엮이는 걸 격하게 부정한 나를 보며 속상해하고 별 말이 없던 그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딱 거기까지만 확신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제목이 <예쁨은 사랑에 비례한다>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남자가 여자의 무엇이든 간에 예쁘다고 한다면 좋아한다는 소리이다.’로 요약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보통 남자가 호감이 없는 여자에게 머리가 예쁘다고 해 주진 않을 것 아닌가. 고작 똥 머리 하나 하고 풀었다고 웨이브 생긴 거 하나로 어떤 ‘남 사 친’이 예쁘다고 해 주겠는가. 근데 그 친구가 딱 그랬다. 그 당시 반에서 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두어 명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둘만 딱. 나한테 예쁘다고 해 주었다. 그냥 그거 하나로 확신을 가졌냐고? 맞다. 나는 조금 무모한 도전을 했다. 아니 사실 너무 티가 났었는데 나 혼자만 무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만우절, 친구한테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고는 충격적인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 걸 엄청 티 냈었다는 소리였다. (그땐 걔가 티를 냈나? 싶었는데 지금 볼 땐 누가 봐도 좋아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반쯤 기대를 품고 그날 밤 그와 연락을 했다.


[야 오늘 만우절인데 왜 아무도 장난 고백 안 함?]

[그니까… 재미없음]

[나 해볼까?]

[누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냥 너 여자 친구 구한다며 ㅋㅋㅋㅋ 너한테 할까 했지]

[아 ㅋㅋㅋㅋㅋㅋ 해 줘]

[??????]

[만우절 장난 아님?]

[나 근데 진짜로 할 수 있음]

[오 해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너 ㅋㅋㅋㅋㅋㅋ 만우절 장난이지]

[나 진지한데?]

[괜찮겠어?]

[그렇다면?]

[너만 괜찮으면…]

[사귈래?]

[그래]


누가 봐도(까진 아니지만 받아줬던 거 보면) 그냥 서로 좋아한다.

그리고 이게 내 끝나지 않을 우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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