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등을 보여주세요

불시착 두려워하지 마세요

by 모든

저는 출간작가가 아닙니다. 평범한 아빠입니다. 제가 무언가 쓰고 있으면 아들은 주위를 기웃거립니다. 그리고 물어보죠. “아빠 뭐해?” 그러면 글을 쓰고 있다고 답합니다. 여러분은 불시착이란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의 수신자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글이 실패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물론 글은 독자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당연하지요. 읽히려면, 또 구매하게 하려면 말이죠. 그러면 독자설정만 제대로 하면 그 글을 읽어준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읽힐 글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반드시 읽힙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죠. 그러니까 말을 바꾸면, 독자를 상정하는 건 너무 기본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서사적인 글이 되게 하는 건 읽히는 글의 핵심입니다. 한병철은 <서사의 위기>에서 서사를 설명하며 그 의미를 서사적, 누적적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서사적은 글이 일정한 흐름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브런치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연재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주제를 정했으면 그에 맞게 아이디어를 정해 글을 써야 합니다.


누적적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주제와 성격에 맞지 않는 글입니다. 전편에 스며들지 않고 이질감을 주는 모난 연속적인 후속 편을 생각하면 누적적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아무리 이야기 형식을 담은 글이어도 누적적이기 때문에 서사를 이루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독자를 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글을 글이 되게 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읽힙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대로 쓴 글은 불시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쓰고 있는 <한 줄 시를 적어 볼까>를 일정기간 동안 쓸 계획입니다. 훗날에 제 아들이 아빠의 글을 읽고 산다면 참 좋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정말 최대한 쉽게 쓰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브런치에 제가 쓰고 싶고, 잘 쓸 수 있는 글을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글은 설정된 독자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선호하는 작가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먼저 구독을 해주셨거나, 아니면 매일 라이킷을 눌러 주셔서 미안한 마음에 구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강승원작가님께는 정말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에 브런치를 시작하고 거의 대부분 가장 먼저 라이킷을 달아주셨습니다. 그게 새벽 1시든, 2시든, 3시든..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구독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누르면 그만인데 왜 안 눌렀을까 싶으시지요. 제가 구독을 누르면 구독을 누른 것을 이유로 내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게 될 까봐 그렇습니다. 훗날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가장 고마운 작가분이십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습니다. 제 아들에게 선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그럼에도 글에 대한 요청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신문에 연재하고 작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청이 들어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 연재한 <어쨌든 당신은 쓰는 사람>에서 “글쓰기는 번역이다”라는 꼭지를 썼습니다. 번역이라는 한 단어를 풀어냈습니다. 당연히 연재였기 때문에 글쓰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독자가 설정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로 한 매거진에서 기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매거진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대상입니다. 번역인들이 글을 쓰는 잡지인데 제 필명인 ‘모든’으로 2월호가 나왔습니다. 유명한 매거진은 아니지만 소개하는 이유는 “불시착”을 두려워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들에게 ‘등’을 많이 보였습니다. 뭔가를 쓰고 있었기에 제 아들은 저의 등을 오래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결과물이 나오면 그걸 아들에게 알려줬습니다. “00아 아빠가 쓴 글이야. 아빠가 쓴 노래가사야. 아빠가 쓴 글이 신문에 나왔어. 아빠가 쓴 글이 잡지에 나왔어.” 그러면 아들은 좋아합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쓰겠다며 도전의지를 보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언가를 줄 때 쉽게 꺼지지 않는 것, 잊히지 않는 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제 글과 제목이 트렌디하진 않아도 서사적 글이 된다면 언젠가 읽힌다는 믿음이 제겐 있습니다. 그리고 구독자수와 라이킷, 댓글에 관계없이 불시착처럼 보이는 제 글은 아들에게서 열매 맺을 것입니다. 언젠가 말이지요. 작가님들의 치열한 앞모습, 샤프한 옆모습, 인내의 뒷모습을 보여주세요. 우리 자녀들이 그 모습을 기억하며 멋지게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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