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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Feb 09. 2024

희망을 기다리는 절망

조지 프레데릭 와츠, 희망, 1886

     

눈을 천으로 가린 여인이 줄이 거의 다 끊어진 수금을 손에 든 채 지구처럼 보이는 둥근 구 위에 앉아 있다. 지친 듯 몸을 웅크린 가련한 모습에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걸까.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 무너져버린 걸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배경은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확장한 것 같다. 


하늘에는 아주 작은 별이 하나 있지만, 눈을 가린 여인은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별은 그녀를 위해 뜬 것이 아니다. 


그래도 수금에 아직 한 줄 현이 남아있다. 어쩌면 여인은 지친 것이 아니라 그 한 줄로 연주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국의 상징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의 작품 ‘희망(Hope)’이다. 와츠는 주로 초상화, 풍경화, 그리스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 알레고리를 형상화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조각가로서도 명성이 높다. 그는 일찍이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으며, 죽기 2년 전인 1902년에는 에드워드 7세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희망’은 총 4점이 있는데, 첫 작품을 전시 후 바로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작가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작품을 사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그 작품을 결국 국가에 기부했다. 1886년에 두 번째 버전을 그렸고,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후로도 계속 ‘희망’의 유명세가 여러 나라로 퍼져서 복제품과 인쇄물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모더니즘이 대세가 된 후, 그의 작품들은 감상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 작품의 인기만은 여전했다. 최근까지도 정치가와 유명인들이 설교나 활동에 이 그림을 주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희망의 본질을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여인의 이름이 희망인 걸까? 이 상황이 희망인 걸까? 희망은 절망적인 상황을 버티게 하는 힘일까? 아니면 그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써 버티는 것이 절망의 지속일까?     


보통 ‘희망’이라고 하면 밝고, 긍정적이고, 힘찬 이미지를 떠올린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에 좌초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의미로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한다. 


또 한고비를 넘어 원하던 고지에 오른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정말 어려웠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으나 실낱같은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한 끝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그러니 여러분들도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그러나 살다 보니 성공이나 개선의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희망 사항이 될 때가 있었다. 또 희망을 품는 일이 과연 나를 진짜 북돋우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는 너무 요원하고, 끝까지 희망으로만 남을까 봐 두려워졌다. 차라리 희망조차 없다면 그냥 아무렇게나 하루하루 굴러가게 둘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아등바등 나를 채찍질하고 괴롭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다.      


아직 간절히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것은 여전히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희망이 있는 한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애쓰기를 무한 반복해야 했다. 실패와 좌절과 고통으로 점철된 ‘절망’의 순간을 경험하고 또 경험해야 했다. 희망은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절망을 감당하지 않으면 희망도 꿈꿀 수 없다. 희망의 불씨를 끄지 않으려면 절망의 순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저 작품 속 여인은 저 악기의 마지막 줄이 끊어져도 테를 두드려 리듬을 만들며 그 상황을 버텨낼 듯하다. 그것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인지, 절망을 연장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희망만큼 긍정적인 것도 없고, 희망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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