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피어나는 시, 김진영 작가의 이별의 푸가를 읽다가
_ 윤서린
누군가와의 만남이 우연히 발견된 아름다운 책이라면 나는 기꺼이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고 그 책을 조심히 펼칠 테지.
그 안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탐독하듯이 읽어가고 밑줄을 그어보고 내 감정을 덧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책으로 만들고 싶어져 안절부절못하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거야.
그 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걸.
다시 제자리에 꽂아둬야 한다는 걸.
그 책은 늘 새로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그 순간, 그 감탄의 순간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쩔 수 없이 알아버린거지. 그 책이 왜 그토록 그 자리에 외롭게 오랜 시간 동안 꽂혀있었는지를.
가만히 원래의 책장에 꽂아놓고 뒤돌아선 나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재채기를 할 때 예감하지. 이 계절이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너라는 책 속의 글자들이 참을 수 없는 재채기가 되어 튀어나오리라는 것을. 그렇게 멈추지 않는 재채기에 눈가가 젖어들면 나는 급하게 마스크를 꺼내 쓰려하겠지. 더 이상 누군가를 떠올리는 글자들이 내 안에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말이야.
그러다 순간 멈칫하고 마스크를 깊이 구겨 주머니에 다시 넣는 거야. 참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재채기지만 이 계절을 완성하는 건 숨길 수 없는 재채기 같은 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알게 되는거야.
네가 목구멍을 간질이고 눈과 코를 비비게 하면 나는 주위를둘러봐. 그리고 나처럼 재채기를 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두리번거리며 찾게 되지.
모두 지독하게 아름다운 책의 먼지에 감염된 사람들. 문득 그들을 찬찬히 읽고 싶어져. 마치 티슈 한통 품에 안아 들고 끝없는 재채기를 해대며, 서로를 감염시키는 사랑의 전염자들처럼.
이 겨울, 이 순간. 우리 모두 숨길 수 없는 재채기를 해. 그렇게 우리는 한번도 만난적없지만 오래전 맞춰온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이별의 합주가를 연주하곤 해.
한껏 움츠려든 어깨로. 자기만의 재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