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피어나는 시
SMY
비가 내린다. 씻어낸다.
부슬한 눈물로 푸르른 싱그러움
모두 씻겨 간다, 흘러간다.
초록이 검붉은 열매를 낳는다,
잎새들 하늘로 날아오른다, 흩날린다.
구름의 꼬리를 잡는다,
여름의 빗금이 흘러 스스로를 지운다.
비가 내린다. 씻어낸다.
부슬한 눈물로 발그레한 설렘
모두 씻겨 간다, 흘러간다.
소란스러운 보름달이 뜬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한다.
계절의 골목에서 다음을 약속한다.
반갑게 인사한다 — 안녕? 안녕.
빈 그릇 같은 맑은 겨울이
가을과 이른 인사를 한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한다.
비가 내린다. 씻어낸다.
여름이 흩날린다, 가을이 손 흔든다.
모두가 씻겨간다, 흘러간다.
하얀 얼굴의 겨울이
살며시 다가온다.
모두 씻겨 간다, 흘러간다.
이름 모를 새가 젖은 날개를 펼친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한다.
안녕, 나의 계절.
2025. 10. 09. PM 02: 49
추석의 긴 연휴 동안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것처럼 말이죠.
이 시는 제가 쓴 <계절을 삼키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노랫말로 쓰인 글입니다.
브런치 연재 [세상에 스미는 노랫말을 씁니다]에 먼저 노래와 함께 공개되었는데 오늘 제 감정을 덧대어 이곳에 다시 올립니다.
사실 어쩌면 시와 노랫말은 마음의 쌍둥이인지도 모릅니다.
'모두 다 씻겨간다. 흘러간다',
며칠간 비가 내리고 모든 것이 씻겨나가고 흘러갑니다.
제 안의 불안감, 우울감, 나약함, 서운함, 부족함, 부질없는 기대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제 영혼을 빗소리에 씻어냅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이 비로소 숨겨온 자신의 색을 드러내듯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여름의 빗금이 흘러 스스로를 지운다', 빗금은 모든 것을 씻어내는 빗줄기이기도 하지만 달력에 그어지는 빗금도 뜻합니다.
빨갛게 익어버린 달력의 날짜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어느새 여름은 스스로를 지우고 떠납니다.
'소란스러운 보름달이 뜬다' , 일 년 중에 가장 소란스러운 보름달은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잠시나마 밀물처럼 삶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나이가 드니 조금은 시큰둥해진 명절입니다. 어려서처럼 신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꽤나 소란스러워지리라 스스로 다짐했고 그렇게 보냈습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처럼요.
'계절의 골목에서 다음을 약속한다', 다음 계절이 우리를 기다리듯, 우리는 다음 만남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계절도 가족도 모두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다음을 약속합니다.
'빈 그릇 같은 맑은 겨울이 가을과 이른 인사를 한다', 가을이다 싶으면 어느새 겨울입니다. 그만큼 제 순서를 오래 기다려온 겨울이 빨리 우리 곁에 오고 싶은 모양입니다. 겨울의 풍경은 다른 계절에 비해 좀 쓸쓸해 보입니다. 풍경에 여백이 많은 계절이죠. 하지만 그렇게 비어있는 순간이라도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깨끗한 빈 그릇 같은 겨울은 다음 계절을 담을 준비를 합니다. 비어있는 겨울이 있기에 봄의 푸르름이 더 빛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겨울은 준비된 흰 도화지 같네요. 모두의 계절이 마음껏 그려지는.
'이름 모를 새가 젖은 날개를 펼친다', 이 문장은 전체적인 글이 완성된 후 추가된 문장입니다.
저는 저희 집에 모이를 먹으러 오는 새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요 며칠도 비를 맞으며 어김 없이 날아오는 새들이 보였어요.
날개가 젖으니 쉴 만도 한데 작은 새는 자신의 날개가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 모습에 용기와 희망을 보았습니다.
작은 새에게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계절이 흘러갑니다.
이 풍경이 마치 계절이 우리에게 보내는 한 편의 산문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제목이 <계절 산문>이 되었습니다.
자연이 낭독하는 산문 한편에 눈과 귀가 호강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계절 산문] 작사 SMY
노래를 들으며 자신만의 가을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