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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건빵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출퇴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 나의 생활반경은 많이 줄어들었다.

동네 헬스장, 동네 카페, 동네 영화관, 동네 PC방, 동네 서점, 동네 롯데리아, 동네 공원 등등.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은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많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나는 집안, 혹은 방안에 조용히 있는 것도 좀이 쑤셔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동네 이곳저곳을 잘 돌아다니곤 한다.

다니다가 붕어빵이나 오뎅을 하나 사 먹어 보기도 하고, 부동산 창가에 잔뜩 붙은 매매정보를 재미 삼아

한참을 뚫어져라 구경도 하기도 하고, 동네 대형서점에서 각종 책들을 기웃거리다가는,

이윽고 서점 입구에 캡슐 장난감 자판기에 돈을 넣고 돌려 보기도 하고,

대형마트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사모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고 무료한 일상이라 꼬집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즐거운 하루 일과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동네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가족을 만날 때가 있다.


어머니는 평일에도 교회를 가시곤 하신다.

그렇게 교회를 가시는 것은 '노방 전도'를 하기 위함인데,

교회를 안 다니는 분들도 한 번쯤 거리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약소한 간식거리와 함께 교회 관련 판플랫 따위를 나눠주는

일종의 포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노방 전도' 중인 어머니를 동네에서 가끔 마주칠 때가 있다.

요즘 어머니가 '노방 전도'용으로 나눠 주시는 간식은 쌀과자와 보리 건빵이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어머니께 다가가, 당당하게 요구해 본다.

"저도 그거 하나 주세요!"

이렇게 동네에서 마주친 어머니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며,

보리 건빵 한 봉지를 쥐어주고는 하신다.

마치 전래 동화 '햇님 달님'에 나오는 호랑이가 된 기분이다.


'건빵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최근 이렇게 건빵을 먹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건빵과 차는 생각보다 궁합이 괜찮은 것 같다.

아마도 그다지 특별히 도드라지는 맛이 없는,

어쩌면 밋밋할 수 있는 건빵이 차의 맛과 향을 그다지 침범하지 않으며,

또한 가뜩이나 퍽퍽한 건빵을 차와 함께 먹으면

목매일 걱정도 없으니 나름 괜찮은 궁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건빵 한 봉지를 쥔 체 차를 마실 생각에

조금은 설레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별거 없지만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만, 사실 나는 건빵보다 쌀과자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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