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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웃긴 사람과 웃긴 인간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나는 4~5년 전쯤, 연남동에 위치한 한 카페를 제집 드나들듯 드나든 적이 있다.

얼핏 연남동이라고 하면, 굉장히 입지 조건이 좋아 보이지만,

그곳은 연남동에서도 제법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카페치고는 거의 최악에 가까운 입지 조건,

주차공간도 없었고, 1층에는 전파상인지 고물상인지 알 수 없는

가게가 있는 오래된 빌딩의 지하 2층.


이런 입지 조건 탓인지 카페 치고는 굉장히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것이

그나마 장점이었지만, 이 카페를 지키는 것은 아르바이트생이나,

별 다른 직원 없이, 사장님 한 분과 사장님의 대형 반려견 한 마리였다.

사장님은 굉장히 청결한 분이셨지만, 그럼에도 그 널찍한 카페를

홀로 매일같이 쓸고 닦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소품이나, 조화 및 화분들 구석구석에는 제법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부분이 좋았고,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카페를 처음 오게 된 것은

당시 알고 지내던, 당시에는 가까웠던, 그랬었던 사람의 생일을 맞아

맞춤 수제케이크를 주문할 요량으로 알아보던 중,

수제 케이크를 잘 만드는 카페가 있다고 하여 찾아왔던 것이 바로 이 카페였다.

내가 이 카페를 자주 드다들던 당시에도 분명 카페이지만,

케이크를 주문하거나,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나 종종 있었지,

정작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커피맛에 아주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커피맛도 제법 괜찮았고, 케이크는 정말이지 맛있었다.

그럼에도 손님은 없었다.


그렇게 유일에 가까운 손님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고, 어느새 그 사장님과는 친한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

사장 형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많은 부분이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특히 가장 재밌었던 것은 사장님은 심각한 인간혐오에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듣고는 왜 손님이 이렇게나 없는지,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하필 서비스 업종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정말이지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베이커리를 하시는 게...'

또한 두 번째로 재미있던 사실은 사장님은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싫어하셨다.

그렇기에 케이크가 팔리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사람이 싫었던, 케이크를 잘 만들지만, 케이크가 싫었던

그 사장 형의 카페는 머잖아 폐업을 했고,

나는 그렇게 한동안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드나들던 곳을 잃었다.

그 카페가 폐업한 지 4~5년 정도 지났지만, 사장 형과는

여전히 가끔 안부를 물으며,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최근 그 사장 형을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사장 형과 옛날 카페 얘기를 나누다 문뜩 궁금해졌다.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어째서 나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을까?


"아니 형, 근데 당시 단골이 나 밖에 없었어?"

"응, 내가 누가 말 거는 거 싫어하는데, 너는 좀 특이하고 웃긴 놈이었지..."

"내가? 왜?"

"내가 카페 할 때, 가끔 서비스로 레인보우 크림치즈 토스트 줬었잖아.."

"응, 그거 진짜 맛있었지..."

"너 그거 먹고는 다음날 나한테 와서, 어제 토스트 먹고 무지개 응가 쌌다고 자랑했었어,

그거 듣고는 좀 모자란 인간인가, 싶어서 내가 잘해줬었지..."

"... 으응? 내가? 그랬다고?"


사장 형은 아마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설마 내가 그런 얘기를 진짜로 했으려고...

기억은 안 나지만,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나도 형을 참으로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장 형도

나를 참으로 웃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웃긴 사람과 웃긴 인간의 오랜만에 회동은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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