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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y 22. 2024

이불

    경도와 소현이의 가장 좋은 장난감은 핸드폰이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볼 때 둘은 가장 즐겁고 어떤 불편한 것도 어떤 원하는 것도 없다. 그때가 고모는 가장 한가롭다. 그렇다고 핸드폰만 보게 둘 수는 없다. 목이 타도록 잔소리를 해서야 겨우 손에서 핸드폰을 놓게 만든다. 

    핸드폰이 없으면 그다음 놀이기구는 이불이다. 건드려서 잔소리를 안들을 것 같은 집안의 모든 이불과 베개를 꺼내 들고 텐트모양을 짓고 들어가 논다. 깨끗하게 빨아 장롱 안에 차곡차곡 개켜둔, 이 계절 이불이 아닌 것은 딱 봐도 꺼내서 놀면 안 될 것이 느껴졌던지, 다행히 고단스 위에 올려놓은 것만 꺼내왔다.

    할머니 집에는 나와 있는 이불들이 늘 좀 많다. 할머니는 자식이 넷이고, 주말에 한 자녀가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게 되면, 깔고 덮고 하는데 상당량의 이불과 베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한 달에도 여러 번이어서, 그렇게 한번 덮은 이불은 금방 세탁기로 향하지 않고, 한동안 쓰도록 고단스 위에 개켜 둔다. 경도와 소현이는 바로 이 이불들을 죄다 끌어내려서 논다.


    경도는 고모가 ‘인간 난로’라고 부를 정도로 온몸이 뜨거워서 늘 더워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러면서도 답답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논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고모가 보기에는 두 아이들이 아직도 저도 모르게 자궁을 그리워하는 모양새로 노는 것 같다. (이건 고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정말 그렇다. <밥 프록터 부란 무엇인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은 종종 어머니 배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어머니 배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것은 그 외 비슷한 감각을 느끼려는 행동이지요.')


    이래저래 놀다가 오늘은 이 색 저 색 이불을 온몸에 둘러 감는다. 그리고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았는지 경도가 봐달라고 부른다. 

    “고모, 나 인어공주가 됐어.”

    그래, 인어공주의 물고기 꼬리처럼 이불이 좀 번들거리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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