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차 11월 11일 ②
이제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하이델베르크로 갈 시간이다. 하이델베르크는 만하임에서 기차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도시다. 그 시절 한 학기의 등록금은 약 80유로(12만 원)였고 등록금을 내면 학생 교통 카드를 받았는데 학교가 있는 도시를 포함하여 근교에 위치한 도시까지 꽤 넓은 구역을 이 카드 하나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만하임에 있으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연습이 힘들고 지칠 때 자주 다녔고 매해 실내악 축제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만하임 다음 독일에서의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랄까.
뉘른베르크에서 출발할 때 날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까 글류봐인을 마셔서 운전을 못하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하이델베르크는 구시가지 한가운데 숙소를 잡아서 시내운전도 해야 하는 와중에 비는 갈수록 더 거세졌다. 아이들은 얌전히 뒷좌석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초긴장 상태로 겨우겨우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https://maps.app.goo.gl/4RVkNW5Sk46GPUS2A 호텔 암 랏트하우스
https://maps.app.goo.gl/HXVdDhfcar5rMeXT9 주차장
여행 마지막 날 밤은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호텔 암 라트하우스 Hotel am Rathaus를 이용했다. 시청사 바로 옆에 있는 호텔로 주차는 근처에 P12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체크아웃할 때 P12에 주차했다고 말하면 24시간 주차를 13유로로 할인해 주는 티켓을 준다. 호텔 앞에 잠깐은 차를 세울 수 있으니 짐을 내린 뒤 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구시가지 내 운전 시 차량금지구역이나 일방통행로에 주의하시길.
8~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래된 호텔인데 위치가 워낙 좋고 4명이 묶을 수 있는 쿼드러플룸이 있어서 선택했다. 예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계단이 가파르고 좁아서 렌터카가 있어 필요한 짐만 들고 내릴 수 있다면 괜찮지만 모든 트렁크를 다 들고 올라가야 한다면 좀 힘들 것 같다. 주방이 없는 호텔이니 조식도 신청해서 먹었는데 소박하지만 모자람 없이 맛있게 먹었다.
주차장에서 호텔로 걸어오는데 광장 앞에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칼 왕자의 궁전 Palais Prinz Carl이다. 하이델베르크 실내악 축제는 매년 5~6월에 열리는 실내악 축제로 만하임 음대의 교수진과 학생들이 주가 되어 진행되는데 그때 연주했던 곳이 칼 왕자의 궁전 안에 있는 거울홀 Spiegelsaal이었다.
"오, 엄마 여기서 연주했었는데!"
"정말요? 엄마 여기서 연주했었어요?"
"응. 엄마가 다녔던 학교 여행 첫날 갔던 거 기억하지? 만하임대학교. 엄마 살았던 기숙사도 보고 했었잖아. 거기랑 여기랑 가까워서 여기서 엄마 연주 했었어."
다시 한번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여행 첫날 만하임에서 느꼈던 그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선배 언니와 신나게 수다 떨었던 카페, 참새방앗간처럼 올 때마다 들렀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파는 가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주 올라갔었던 철학자의 길, 부서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하이델베르크성, 얼마나 부자가 되면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궁금해했던 네카강변의 고급 별장들... 끝도 없이 아이들과 남편에게 나의 추억을 나누어 주었다. 스물의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었던 하이델베르크는 마흔의 나에게도 그대로 행복과 기쁨의 도시였다.
야경을 구경하기 전 배부터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여행 마지막 밤의 메뉴는 또다시 학센과 맥주, 그리고 슈니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장 멀리, 가장 오래 한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물론 이번 여행 이후로도 가족 여행은 계속되겠지만 이렇게 멀리 그리고 오래 하는 여행은 한동안은 힘들 것 같다.
https://maps.app.goo.gl/S595Td8ajEtfSsuC7
밥을 먹고 카를 테오도르 다리 쪽으로 걸었다. 이 다리는 네카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테 브뤼케 Old Bridge라고도 불린다. 커다란 다리의 문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가면 하이델베르크 성과 네카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는 길에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