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렌터카 여행 39 - 15일 차 11월 12일 ①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체크 아웃하기 전에 먼저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오후 6시 반 비행기라 오전밖에 시간이 없어 하이델베르크성 또는 '철학자의 길'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뮌헨의 레지덴츠 이후로 다시는 성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들은 '철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꽤 가파른 길을 꼬불꼬불 올라가야 하는데 등산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힘들지는 않겠다 싶어서 철학자의 길로 향했다. 이곳은 누구든 만하임으로 날 만나러 오면 꼭 데리고 갔었는데 다들 올라갈 때는 힘들다고 투덜대다가 정상에 올라 풍경을 보고 나면 엄지 척을 해줬던 곳이다.
이 길의 이름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은 낭만적인 산책을 하며 사유하는데 최적인 이 길을 일찌감치 발견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들로부터 유래하였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유럽의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학생들은 전공분야를 배우기 전에 철학을 먼저 의무로 배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 학생과 철학자는 (Student und Philosoph) 동의어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지금까지 3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명실공히 탁월한 학자들의 산실이라고 하겠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하이델베르크 물리 연구소가 나오는데 매번 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교수와 학생들 모두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어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ㅎㅎ
철학자의 길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을 보자.
1. 주황색 길 - Philosophenweg의 표지판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구글맵에 시작점을 저장해 두자.
2. 빨간색 길 - 알테 브뤼케(보라색)를 건너 뱀길(Schlangenweg)로 올라가는 방법
내가 추천하는 코스는 두 번째 방법이다. 뱀 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는 게 힘들지만 재미도 있고 중간중간 전망대도 있고 언덕에 풀어놓고 키우는 산양들도 만날 수 있다. 경사진 곳에 요령 있게 서서 풀을 뜯어먹는 양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
등허리에 조금씩 땀이 나는 게 느껴질 때쯤이면 뱀 길은 철학자의 길과 만난다. 거기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위로 좀 더 걸어가자.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체력을 계산한 후 좀 더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걸 추천한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도 움직이고 굳었던 생각이 풀려 유연해진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들이 이 길을 걷길 즐겼던 것이리라. 잠시 길 중간의 벤치에 앉아서 쉬면서 내가 여길 또 올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나에게 물어본다. '여기 또 올꺼야?'
스물셋의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원서를 쓰고 트렁크를 끌고 시험이 있는 도시마다 유스호스텔에 묶으며 입학시험을 봤었다. 요즘은 유학원도 많고 내 주변을 보면 엄마가 같이 동행해서 밥을 챙겨주며 입학시험을 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것이 익숙했고 자신이 있었다.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인데. ㅎㅎ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유학을 시작했었다. 카톡도 없었기에 전화방에 가서 선불카드를 사서 부모님과 통화를 했어야 했고 실시간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이메일이 부모님과 나의 주 통신수단이었다.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낸 것은 꿈을 향한 목적의식이었다. 내 딸들도 독립심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내가 열심히 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데 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상상하며 단 한 가지 불안한 것은 '건강'이다. 열심히 관리해도 건강은 갑자기 내 곁을 떠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인생에서 달려 나가는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건강인데... 그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