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채우려고 하지 마.
월요일이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원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 가슴 한편이 저릿저릿하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워졌던 월요일 아침을.
하지만 지금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일을 쉬고 있고 더구나 여긴 말레이시아라고! 그러니 내 마음아, 진정해 주겠니?
첫째가 학원을 가고, 둘째와 나는 그랩을 타고 초우킷 시장으로 갔다. ‘전통시장 구경도 하고 망고도 싸게 사 오자.’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장이 조용하다. 벌써 장사가 끝났나? 싶어 들어가는 순간 생선과 고기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50미터 정도 들어가다가 돌아선다. 아니다. 여기 못 간다. 둘째는 이게 무슨 냄새냐며 ‘엄마, 나가자.’라고 한다. 일단 후퇴. 길을 지나가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오늘 장사 안 한다고 말씀해 주시며, 아주머니도 허탕을 치셨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오늘 장사를 했어도 저는 못 갔을 거예요’하고 웃는다.
시장 입구에 과일가게가 있어 망고와 바나나를 샀다. 마트에서는 망고가 1킬로그램에 18링깃이었는데, 여기는 7링깃이다. 그런데 아까 만난 아주머니가 초우킷 시장 안에서는 5링깃이라고 알려주셨다. ‘아니에요. 저는 5링깃에는 못 샀을 거예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커다란 망고를 다섯 개 사고 바나나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둘째가 수학을 푼다. 풀라고 몇 번을 말해서 마지못해 푼다. 하루에 두 쪽씩 풀기로 했으나, 어제는 놀았으므로 네 쪽을 푼다. 입이 댓 발 나왔다. 수학이라도 풀지 않으면 드러누워 유튜브를 볼 것이다. 결국 한 시간 동안 징징거리며 풀어낸다.
첫째가 하원을 한 후, 수영장으로 간다. 수영장을 자주 가다 보니 수영을 못하던 둘째는 첫째의 특훈으로 무려 자유영과 배영을 하게 되었다. 와우!
한 시간쯤 지나 비가 온다. 지금 이곳은 보통 하루에 한 번 짧게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니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하니, 우리 둘째 입이 비쭉하다. 한창 재미있을 때 가자고 하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지만 천둥 치는 하늘 아래에서 비를 맞으면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둘째는 속상하니 괜히 형아에게 짜증을 낸다. 하……
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쌓여있던 잔소리를 꺼내기 시작한다. 핸드폰만 할 거냐, 오늘만 수영하냐로 시작하는. 그동안 제 마음에 안 들면 입을 비쭉거리는 모습이 영 마뜩잖았는데 오늘 나도 폭발한다.
나도 안다. 집 안에서는 마땅히 할 게 없다는 것을……그렇다고 수학문제집을 열심히 풀길 바란다는 게 이 시점에서 얼마나 웃긴 생각인지……그래. 할 일을 주마. 앞으로는 집안일을 나누자고 제안하니 쓰레기 버리는 건 자기들 둘이 하고, 빨래는 첫째가, 청소(돌돌이)는 둘째가 한다고 한다.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니, 오늘부터 자기들이 한다고 빨래를 돌리고 돌돌이를 돌린다. 둘째는 돌돌이 돌리는 게 너무 힘들다며, 엄마 혼자 다 하기에 힘들었겠다고 한다. 이것은 애교인가 효도인가. 어쨌거나 든든한 내 아들들이다.
잔소리를 퍼부은 나도 미안해서 오늘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 첫째가 시킨 아삼락사는 내 입엔 딱이었는데 첫째 입에는 어려워 내가 먹는다. 첫째는 미안한지엄마 진짜 그거 좋아하는 거 맞느냐며 계속 확인한다. 나 정말 좋아. 멸치젓갈 먹는 거 같고 좋아. 진심이다.
돌아오는 길에 klcc공원 음악분수도 보고 설 분위기도 느꼈다. 라벤더 빵집에 들러 내일 먹을 빵을 사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간다. 오늘 과용했으니 내일은 집에서 먹자. 순두부찌개를 끓여주마.
아이들은 자고 나 홀로 소파에 앉아있는 이 순간
오늘 왜 이렇게 잔소리를 퍼부었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실은 짐짓 아닌 척했지만 사실은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맛집도 가보고 체험도 해 보고 쇼핑도 해 보고’가 뜻대로 안 되어 그랬던 것 같다.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나 보다.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또는 더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지나치게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 덕에 덜 고생하고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내 마음에 남은 건 그런 순간이다. 초우킷 시장에서 돌아오던 그 순간처럼 뭔가 딱딱 들어맞지 않을 때 내 마음이 어떤지를 보는 그런 순간 말이다.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며 메뉴를 정하는 순간, 주문을 받으러 오시는 분의 상냥함에 나도 덩달아 미소 짓는 순간, 따뜻한 공기가 주는 아늑함을 느낄 때, 이런 것들이다. 체험을 하러 가면서 만난 그랩 기사님의 농담과 배려의 침묵, 분노의 잔소리와 냉전 후 화해를 하고 배를 채우는 순간, 아들과 손잡고 걷는 순간, 해맑은 아들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나, 이런 것들이 모여 이 순간이 되고 추억이 된다.
나는 내가 만난 말레이시아를 경험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 따라 하기가 아니라…… 그러니 내 마음아,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정해.
오늘 내가 예민했던 건 월요일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내려놔야 할 마음 때문이었다고
이렇게 여유와 미소를 배워간다.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