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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차라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날씨는 좋지만, 베란다를 통해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은 흐릿해져 있다. 봄비가 내려서 이 먼지들을 모두 멀리멀리 흘려보내 줬으면. 비가 그친 다음 날 햇살은 눈 부시고 풀 이파리엔 이슬이 맺혀있고 공기는 가볍고 사람들의 기분은 무척 좋아 보인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처럼.
오래된 무언가를 물로 씻어내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세면대 배수구던지, 오랫동안 같은 화분이 놓여있던 화단 구석이던지, 낡은 차를 씻어내는 작업이던지. 그냥 휴지로 닦아내는 것과 물로 씻어내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마치 무언가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보는 듯한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을 알고 보면 꽤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는 뇌를 꺼내서 아주 시원하고 깨끗하게 흐르는 물로 헹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붙어있는 생각의 찌꺼기들을 흐르는 물에 씻어내고 싶다. 마무리 못 한 작업과 순간의 말실수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걱정, 고민, 후회의 편린들을.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수도꼭지 아래에 뇌를 그려 넣어 더러운 것들을 흘려보내는 것을 상상하고 싶다. 농부가 그날의 일을 마치고, 흙 묻은 장화를 천천히 씻어내듯이, 오늘의 불필요한 상념을 흘려보내고 비 온 다음 날 맑게 갠 아침을 준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