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니라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는 것인가?
여래께서는 그것을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성제(四聖諦)를 통해서 일러주신다.
괴로움이 있는데, 그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괴로움을 완전히 멸할 수 있으며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 도라는 것이고, 괴로움을 없앤 상태가 해탈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보면 고(苦)가 없으면 집멸도(集滅道) 역시 없게 된다.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는 것은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원하는 중생들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따로 법이라든가 기타 무엇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중생들의 본성, 인간의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마음의 발로이므로 불법(佛法)은 영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고(苦)를 멸하는 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따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부처님이라든가 하나님이라든가 알라신이라든가 하는 나 외부의 존재가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무엇을 받고 얻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 이외 외부의 일체의 존재가 주는 그 어떤 것일지라도 (천국, 행복, 극락, 복 등)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므로 한계가 생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고(苦)가 적은 사람일수록 현재상태에 안주하게 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을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렵다고 표현하신 것이다.
그럼 고(苦)가 많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잘 내거나 천국에 가는가?
그것도 아니다. 자칫 헛고생에 시달려 존재 자체가 지옥에 가기 알맞게 되어있을 정도로 그 마음이 누더기가 되고 영혼이 망가지기 쉽다.
왜냐하면 괴로움이란 상(相)에 붙어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므로, 고(苦)가 많으면 고(苦)를 줄이는 방향으로 마음을 발하고 노력하겠지만, 그 의식이 상(相)의 한계 내에 매여 있으면 그 노력 자체가 또 다른 괴로움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잘 낼 수 있게 되는가?
고(苦)가 있는 것에 대해 그 집멸도(集滅道)를 잘 통찰해야 하는 것이다.
괴로움이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그 괴로움을 멸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잘 찾아야 하는데, 여기서는 상(相)을 넘어선 의식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하면 그 통찰 자체가 번뇌망상이 되기 때문인데,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망상(妄想)의 집을 단단하게 지어서 더욱 큰 고(苦)를 초래하게 되고, 나아가 고(苦)로부터 더욱더 벗어나기 어렵게 되고 도(道)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상(相)으로 살아가는 자기 처지로서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이 필요한 것이다.
자, 여기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데, 그것은 좋지만 자기 존재 밖에서 따로 법이나 진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임을 누차 경고해 주신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역시 자기 안에 다 있는 것이지, 외부와는 일체 조금의 관련이나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서 스스로 자기를 향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해야 하는 것이고, 또 따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고 생각하면 또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니 자기 안에 진리가 있다고 또 생각하여 찾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안의 자성불(自性佛)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