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만들기보다는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중
저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MBTI로 보면 전형적인 파워 J. 계획이 구체적일수록 안정감을 느끼고, 그 계획이 실현될 때 비로소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성격 덕분에 좋은 학업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병원에서는 체계적이고 믿음직한 동료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이 더 복잡해질수록,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제게 큰 스트레스가 다가왔습니다.
계획이 어그러질 때마다 그 원인을 찾아내고 고치려는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왜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까?” 그 고민의 끝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결론이 남았습니다. “내 능력이 부족한가?” “노력이 모자랐던 건 아닐까?” “혹은 상황이 너무 나빴던 걸까?” 이런 자책과 한탄 속에서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게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획이란 것이 제게 안정감을 주는 도구라기보다 삶을 더 무겁고 복잡하게 만드는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을 계획대로 처리하려다 보니 오히려 삶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로 가득하다는 사실만 더 두드러졌던 것이죠.
그러다 우연히 접한 니체의 책 제목이 제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라는 메시지가 그 제목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니체는 ‘운명애(Amor Fati)’라는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운명애란, 내게 주어진 상황과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계획이 틀어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접하고 나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내 계획이 틀어졌으니 이건 실패야”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계획대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 앞의 상황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마치 서핑을 하듯, 거대한 파도를 맞닥뜨리면 그 물결에 맞춰 균형을 잡아가며 타는 것입니다.
계획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틀어질 때,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물결을 타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삶의 변화를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대응하며 사는 법이 아닐까요?
니체의 운명애를 배우며 이제는 불확실성조차 조금씩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획이 어긋날 때, 그것이 나의 능력 부족이나 실패가 아니라 삶이 본래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우리 삶의 본질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그 계획이 어그러질 때 그 순간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큰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잡고 물결을 타는 법을 배워가며,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계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그리고 불확실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