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비대칭
"공주를 사랑한 병정이 있었어. 그 병정은 공주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100일 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녀의 창가에 서서,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기를 기다리겠다고 했지."
"그래서 그 병정은 정말 공주의 창가를 지켰나요?"
"물론이지. 병정은 코 끝에 눈발이 날릴 때도 공주의 창문 밖에 서 있었어. 하염없이 그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말이야."
"그래서요? 결국 병정은 공주의 사랑을 얻었나요?"
"글쎄다. 그건 모르겠구나. "
"왜요?"
"그 병정은, 약속한 100일이 되기 하루 전, 99일째 되는 날 밤에 자리를 뜨더니 그대로 떠나버렸거든ᆢ"
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될 걸, 대체 병정은 왜, 99일째에 떠나버린 걸까?
병정이 떠난 걸 알게 된 공주는, 슬퍼하거나 아쉬워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홀가분했을까?
그걸 떠나서, 공주는 병정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병정을 가지고 놀았거나, 친구들과 내기를 했던 걸까?
다시 돌아가서, 병정은 왜, 대체, 하루나 이틀째도, 일주일째도, 보름째도 아닌, 35일이나 76일째도 아닌. 바로 99일째에 떠난 것일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결말을 한번 그려보겠다.
<병정의 마지막 도박-1차시>
(시계탑이 밤 열두 시를 울리기 직전, 병정이 아직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창 밖을 바라보던 공주와 병정의 눈이 마주친다.)
(병정은 공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99일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정의 여유 있는 미소에 공주는 잠시 놀란다.)
(병정은 공주에게 멋지게 짪은 목례를 하고, 그대로 뒤돌아서 가버린다.)
공주: (조그맣게 혼자 속삭임)아, 저기 잠깐만ᆢ(뒤돌아 시녀를 부른다.) 저기, 에밀리! 떠나는 병정을 불러 세워 줘!
시녀 에밀리 : 네! 공주님! (하인들을 부르며) 빨리 뛰어가서 저 병정을 잡아와라! 당장!
하인들 : 넵!!
(잠시 후, 병정은 하인들에 이끌려 공주의 방 문 앞에 다다른다. 공주는 병정의 얼굴을 본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많이 핼쑥해지고 피곤해 보인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공주를 바라보는 병정. 공주는 호위무사 두 명만을 남기고 주변을 물리친다.)
공주 : 당신, 대체 왜 약속을 어기려고 한 거죠? 100일만 기다리면 내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얻을 기회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신,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남자였나요?
병정 : (여유 있는 자세로) 그렇다고 떠나는 저를 이렇게 불러 세워 이유를 물으시다니...(미소 지으며 잠시 말을 멈춘다) 정말 영광입니다. 공주님.
공주 : (조금 뾰로통해 보인다) 아무튼, 당신, 정말 가려고 했던 건가요?
병정 : 정말 대답을 듣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조건이 있습니다.
공주 : (어이없어 하며 얼굴이 붉어진다)뭐라고요? 기가 막히네요! 감히 내게 조건 따위를 붙여서 흥정하려 하다니! 당신이 가든 말든 난 상관없으니, 당장 꺼지세요!
(... 그렇게 병정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도박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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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의 마지막 도박-2차시>
(시계탑이 밤 열두 시를 울리기 직전, 병정이 아직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창 밖을 바라보던 공주와 병정의 눈이 마주친다.)
(병정은 공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99일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정의 여유 있는 미소에 공주는 잠시 놀란다.)
(병정은 공주에게 멋지게 짪은 목례를 하고, 그대로 사라진다.)
공주 : (뭐야 저 새끼..) 잠깐만 기다려요!(창밖을 보며 외친다)
병정 : (돌아서며) 네? 저를 부르셨습니까? (창가로 다시 돌아온다)
공주 : 네! 당신! 대체 왜 그냥 가려고 하는 거죠? 하루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병정 : (창문 위를 올려다 보며)그렇습니까? 그럼 하루만 더 기다리면, 저를 받아주실 겁니까?
공주 : (잠시 생각해보고 나서) 뭐, 그건 내일이 돼봐야 알겠죠?
병정 : (활짝 웃으며) 좋아요. 그럼 내일까지 기다려 보겠습니다!
공주 : (참나ᆢ웃기시네..) (시녀를 보며) 에밀리, 저자를 즉결 처형해! 저자는 100일 동안 내 창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말해놓고 그걸 어긴 반역자야!
시녀 에밀리 : 네! 공주님!
(... 그렇게 병정은, 공주를 사랑하다가 멈춘 죄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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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의 마지막 도박-3차시>
(시계탑이 밤 열두 시를 울리기 직전, 병정이 아직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창 밖을 바라보던 공주와 병정의 눈이 마주친다.)
(병정은 공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99일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정의 여유 있는 미소에 공주는 잠시 놀란다.)
(병정은 공주에게 멋지게 짪은 목례를 하고, 그대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구 뛰어 달아난다.)
공주 : 저 새끼 잡아라! 에밀리! 어서!
에밀리 : 넵! 공주님! (하인들을 보며) 여봐라! 어서 저자를 잡아서 공주님 앞에 대령해라!
공주 :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병사, 전력 질주한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 바닷가에 이르러 마침내... 배를 발견하지 못하고 뒤쫓아온 공주의 수하들에게 잡히고 만다.)
병사 : 헉헉... 배만 있었어도! 도망칠 수 있었는데...
공주의 수하들 : 그러게.. 넌 이제 죽었다! (병사를 포박하며) 그러게 대체 왜 공주를 99일이나 기다린 거야? 너 공주 성격 몰랐지? 쯧쯧... 이래서 정보가 빨라야 하는 거야..
병사 : (침울하게) 난 정말이지.. 공주가 그 유명한 '푸른 수염'인 줄 몰랐어...
*작가의 주 : '푸른 수염'은 부인을 새로 맞을 때마다 계속 죽이는 폭력적인 남편을 그린 이야기이다. '공주와 병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주는 막대한 부와 권력과 아름다움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으나, 사실은 매번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을 죽여서 광에 넣어놓았던 사이코 패스였던 것이다.
수하들 : 자, 이제 공주님에게 끌려가면 바로 죽을 텐데. 마지막으로 유언이나 한 마디 하도록 해!
병사 :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지어다!)
... 그리고 그 병사는 공주의 셀렉션(수집품) 목록 제101호가 되었답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보려고 숱한 시도를 해 보았으나, 어떻게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맨스물에 닭살 체질인 작가의 성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로, 공주와 병정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기 힘들었을 테고, 두 번째로, 병정이 공주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잘 드러나지 않으며(기껏 해야 공주의 외모나 부유함, 권력에 반하지 않았을까? 병정이 공주와 인사라도 한번 제대로 나눠 보았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약 공주가 병정과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창 밖에 서서 100일 동안이나 무조건 기다리게 하는 그런 만행은 절대 저지르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일단 데이트를 하면서 알아보는 게 당연한 순리 아닌가? 술을 한번 먹여서 어떤 주사가 있는지 보거나..
그래서, 결론은, (내 생각은) 병정이 99일 동안 기다리다가 자리를 뜬 이유는, 그것이 미친 짓이라는 걸 바보같이 99일째에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만 더 버티면 공주가 자신을 만나 주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거니까...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접고, 자신을 사랑해 줄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 맞다.
100일이나 99일이나 마찬가지고, 이 어처구니없는 가학-피학적 사랑 이야기는 결국 파국을 맞았을 테니..
'사랑의 비대칭성'은 모든 연애 사건의 가장 기본적 테마인 것 같다. 시소의 높이가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짝이 될 수 있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나는 솔로'를 보고 난 후 갑자기, 이런 글이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