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을 바라보는 시니어의 눈에 삶의 파도는
격랑의 소용돌이에서 살려고 몸무림 치던 순간의 잔상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되어 슬라이드 화면에 나타나는 빛이다.
반전에 반전을 이어온 삶의 파도와 나의 소신 사이에서 흔들릴 때
자연이 주는 위안을 받으며 견뎌왔다.
관엽식물, 등산, 민물고기, 야생화들은 삶의 버팀이 되는 취미의 시간들의 파노라마다.
거꾸리개고사리는 한라산 등산로 돌 계단 틈에서 자란다.
은퇴 후 제주살이를 하게 된 것은
제2의 삶을 나답게, 나의 소신으로 살고 싶어서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속담처럼
은퇴 전의 과거는 모두 잊고 새 인연으로 새 삶을 살고 싶었다.
제주는 그런 마음에 적합한 이상적인 세계였다.
보금자리를 준비하고, 인연을 만들고, 신세계를 탐험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밀려들어 인연을 밀어냈다.
홀로 제주 계곡을 탐사하며 양치식물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라산 계곡에서 거꾸로 처박히는 낙상사고가 일어났다.
경비골이 골절되어 제2의 삶에도 인생 반전이 닥쳐왔다.
계곡에서 살아남은 삶은 재활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정신으로 재활했다.
1년 후 다시 제주에 와서, 재활을 하면서 잊었던 고사리 이름을 되새겼다.
우편이 아래 부분이 좁아져 거꾸리개고사리이다.
거꾸리개고사리는 한라산 진달래 산장 근처의 등산길에 서식한다.
등산로 돌계단 틈에 뿌리내리고 등산객 발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잎몸의 날개잎이 아래 부분에서 좁아져 거꾸리개고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꾸리개고사리를 촬영하려면 머리를 등산로 계단 아래로 처박아야 한다.
귀에 들려오는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커진다.
얼른 고개를 들어 비켜주면 "뭐 하세요?" 소리가 들린다.
낮에는 꽃을 찾고, 밤에는 헬스장에서 재활했다.
헬스장 한곁에 거꾸로 운동기구가 있다.
1시간 정도 재활하고 마무리로 거꾸리 기구에 누워 서서히 거꾸러진다.
피가 역류하고, 러닝머신의 달리는 사람들의 빠른 다리가 눈에 아른거린다.
보이는 것들이 환상처럼 아지랑이를 그린다.
내 다리는 언제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거꾸리개고사리 포장낭군(좌), 줄기와 새순(우)
내 삶에서 내가 보는 나는 누구인가?
내 삶에 들어온 양치식물을 표현할 자격은 있는가?
나는 식물 전문가도 아니요, 더구나 양치식물은 은퇴 후에 접근한 취미 분야이다.
또한 글재주가 있어 재미있게 글을 쓰지도 못한다.
글은 딱딱하고 상상은 미천하다.
재활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양치식물은 뒤늦게 발견한 신비의 세계이다.
바둑 두는 사람보다 훈수가 더 잘 보이듯이
초보자의 눈에 띄는 특별한 고사리를 찾고 찾았다.
섬잔고사리, 큰고란초의 발견은 나의 큰 흔적이다.
양치식물의 아름다움과 멋을 본 것은 귀중한 나의 경험이며 행운이다.
나만이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자산이다.
나의 양치식물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경험과 알려고 노력한 나의 열정이다.
끌리는 것에 빠져보는 나의 소신을 격려한다.
양치식물에 관해 누군가의 호기심에 불을 붙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삶의 굴곡에서도 굳게 일어서는 나의 모습이 장하다.
어렵더라도 나의 양치식물 이야기를 이어가자.
내 삶에 그리는 나의 그림에 믿음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