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막 찾다가 양치식물의 자연사까지
배내옷을 입은 아기들이 바로 고사리 포자낭군
고사리를 공부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본다.
해산바가지
성남에서 너무 장기간 거주해서 집수리를 하는데 해산바가지가 나왔다.
해산바가지에 담긴 할머니 마음과 미역국을 드신 엄마의 사랑이
배내옷을 입은 아기에게 깃들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박완서 소설 '해산바가지'를 다시 읽었다.
"잘생긴 해산 바가지로 미역 빨고 쌀 씻고 두 개의 해산 사발에
밥 따로 국 따로 퍼다가 내 머리맡에 놓더니
정성껏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명과 복을 비는 것이었다.
그런 그분의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아름답던지"
시니어의 마음에 굽이굽이 어려웠던 시절이 되살아난다.
아들과 딸이 태어났을 때가 아닌 왜 내가 태어났을 때를 그려보는지
은퇴 후에도 구구절절한 재활을 이어가는 나에 대한 애틋함의 발로일까?
생명의 조중함을 해산바가지에서, 낙상사고에서 절실히 느꼈다.
산다는 것은 기쁨이고 희열인데 그렇게 살았던가?
양치식물 포막이 나를 감상적 시니어로 만들고 있다.
홍지네고사리 / 포막이 붉은색이다.
양치식물의 "포막"이 뭔지 검색하다가
"양치식물의 자연사"를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양치식물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포막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양치류의 홀씨주머니무리를 싸는 얇은 막"이라 표현한다.
"홀씨주머니무리"는 "포자낭군"을 말한다.
양치식물의 포자들이 담긴 주머니들(포자낭군)은
대부분 배내옷 역할을 하는 포막(包膜)으로 덮여있다.
포자를 보호하려는 양치식물의 간절한 진화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렇게 포막의 보호를 받으며 포자들이 익어가고
나중에는 포막의 옆구리가 터져서 포자들이 날아간다.
생명의 소중함을 고사리 포막에서 배운다.
새깃아재비 / 포막이 벌어져 포자들이 날아갔다.
포막이 있거나 없는 것
포막에 털이 있거나 없는 것
포막의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갈라진 것
포막의 재질, 포막의 모양 등이 양치식물을 구분하는 동정 포인트도 된다.
포막의 구분들이 고사리의 종이 되고 이름도 얻는다.
이름은 조중한 생명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고사리 이름을 불러주며 더 가까이 다가간다.
뱀고사리 / 포막의 모양이 긴타원형, J자형, 갈고리형 등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개고사리 / 포막의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좀진고사리 / 포막에 털이 있다.
봉의꼬리 / 잎의 가장자리가 뒤로 말려서 포자낭군을 감싸는 가짜 포막이다.
뿔고사리 / 뿔고사리속은 포막이 없어 포자낭군이 노출된다.
갑자기 강풍을 동반한 3월의 강추위
혼쭐나게 추운 산책길을 걸으며
두꺼운 겉옷과 털모자로 감싼 얼굴을 하고
배내옷과 고사리 포막을 떠올린다.
야생화들도 꽃대를 올리다가 깜짝 놀란 추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