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포자와 종자
민들레 홀씨, 그냥 보지 말자.
홀씨와 겹씨는 우리 말의 자존심
자연의 이치는 우리의 삶의 흔적
80년대의 노래 "민들레 홀씨 되어"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민들레는 홀씨(포자)가 아니라 겹씨(종자)를 날리기 때문이다. 홀씨와 겹씨, 이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이 양치식물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턱이다. 자연의 이치는 때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도 닮아 있어, 그 용어를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홀씨, 즉 포자(胞子)는 이끼나 양치식물이 선택한 번식 방법이다. 단세포인 포자(n)는 먼지처럼 작고 가볍다. 하지만 가벼운 만큼 짊어진 삶의 무게는 녹록지 않다. 포자에게는 씨앗이 가진 '배젖', 즉 도시락이 없기 때문이다. 든든한 도시락을 챙겨 떠나는 종자(2n)와 달리, 포자는 아무런 준비물 없이 바람에 몸을 싣는다. 척박하고 건조한 곳에 내리면 발아하기도 전에 말라 죽기 일쑤이다.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복권 당첨만큼 낮다는 포자의 생존 투쟁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세상을 버텨내던 우리의 젊은 날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고사리삼의 포자낭 이삭을 살짝 흔들면 송홧가루 같은 포자들이 담배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 경이로운 장면 뒤에는 '포자낭군'이라는 치열한 질서가 있다. 현미경을 들이대야 보이는 먼지 같은 포자들은 둥그런 주머니(포자낭) 속에 몸을 숨기고, 다시 그 주머니들이 묶여 '포자낭군'을 이룬다.
대부분의 고사리는 하나의 주머니 속에 예순네 개의 포자를 품고 있다. 도시락도 없이 홀로 떠나야 하는 운명이기에, 떠나기 전까진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온기를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양치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작고 낮은 것들의 연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깊은 계곡에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난 후, 늘씬한 자태로 날개를 펴고 있는 각시고사리를 만났다. 그 고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연애 시절 아내의 수줍던 모습이 떠오른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는 손주며느리를 보며 흐뭇해하시던 할머니의 그 마음처럼, 생명은 늘 따뜻한 도시락을 그리워하며 이어져 왔다. 세월은 흘러 나이든 시니어의 얼굴을 생각하면 고사리의 먼지 같은 포자처럼 우리네 삶 또한 한 줌 먼지와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 계곡에서 만난 각시고사리 덕분에 잊고 있던 추억의 책갈피를 다시 들춰보았다.
#양치식물 #포자 #각시고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