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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같은 포자는 도시락이 없다

포자와 종자

by 로데우스
img.jpg 포자와 종자 비교


"민들레 홀씨 되어"란 80년대 노래가 있다.

그런데 민들레에 "홀씨"가 있을까?

여기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홀씨는 포자(胞子)를 의미하고, 이끼나 양치식물의 번식 방법이다.

단세포의 먼지 같이 작은 포자(n)가 날아가서 번식할 확률은

복권 당첨과 같이 매우 낮다고 한다.


그래서 포자는 종자(種子)로 진화했다.

종자(2n)는 포자와 달리 배젖(도시락)을 가진 다세포 씨앗이다.

도시락이 있으니 종자는 쉽게 죽지 않고 번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민들레 홀씨 되어"는

"민들레 씨앗 되어"로 바꿔야 어문에 맞다.

종자와 포자의 구분은 일반 식물과 고사리의 큰 차이점인 것이다.



h_4a3Ud018svc6k3z51jpcr9o_t7sgya.jpg 고사리삼 포자

고사리삼은 포자낭 이삭이 올라오는 양치식물이다.

포자낭 이삭을 흔드니 포자들이 송홧가루 날리듯 흩어진다.

고사리삼이 혹시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멋진 장면이다.


포자는 단세포로 아주 작아 먼지와 같다.

포자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그 모습이 보인다.

이런 포자는 세포 1개만이 있는 단순 구조이다.


그래서 건조한 곳에 포자가 착륙하면

도시락이 없으니 금방 말라죽는다.

"이끼와 함께" 책에서 본 어느 이끼 포자의 발아율은 최악이었다.


img.jpg 각시고사리 포자낭군


고사리 잎 뒤를 보면 검은색의 덩어리들인 "포장낭군"이 보인다.

"포자낭군"은 <포자+포자주머니+포자주머니 묶음>의 뜻이다.

즉, 포자들은 둥그런 주머니(포자낭) 속에 들어 있고

그 주머니(포자낭)들을 묶어 "포자낭군"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고사리류 포자낭 속에는 64개의 포자들이 들어있다.

이 먼지같이 작은 포자들의 묶음인 "포자낭",

여러개의 포자낭을 지칭하는 "포자낭군"은

양치식물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용어이다.


운동 경기를 재미있게 보려면 용어와 규칙을 알아야 하듯이

양치식물도 양치식물 만의 특수한 용어와 생태를 알아야 한다.

그 턱을 넘어야 양치식물의 신비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다.


img.jpg 각시고사리


늘씬하고 잘 생긴 각시고사리가 깊은 계곡에서 날개를 폈다.

외로운 각시에게 다가간 꽃객은 그 얼굴을 자세히 본다.

젊은 시절 아내와 연애할 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집에 와서 밥그릇을 뚝딱 비운 모습을 할머니가 보시고는

흐뭇한 얼굴로 손주며느리의 손을 잡으셨다.

세월은 저 멀리 흘러 나도 시니어가 되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각시고사리를 보니

아내와의 젊은 시절 추억이 제주 계곡의 하늘에서 아른거린다.

고사리의 먼지 같은 포자처럼 우리네 삶 또한 먼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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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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