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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자를 튕겨내는 스프링

환대

by 로데우스 Mar 11. 2025

 
  
제주살이에서 통영살이로 바뀐 첫겨울
긴긴 겨울이 봄을 오길 꺼려하는 것 같다.
이른 봄꽃들이 필 시기가 지나도 겨울이다.


비늘고사리


봄을 환대(歡待)하고 싶은 마음이 구구절절하지만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계곡은 서늘한 바람만 불고 있다.
꽃이 없는 2월말에 책상에 앉아 양치식물 이야기를 쓴다.
 
고사리에서 환대(環帶)라는 시스템을 쓸 차례이다.
집안에서도 다리와 무릎의 느낌이 서늘한 이색적인 겨울
봄을 환대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고사리 환대로 위로한다.
 
"환대(環帶)"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양치식물의 홀씨주머니 위를 고리 모양으로 에워싼 두꺼운 막으로 된 세포의 열
이것의 작용으로 성숙한 홀씨주머니가 열리고 그 속의 홀씨가 밖으로 뿌려진다."라고 표현된다.
 
물의 점착력과 증발력을 이용해
환대가 뒤로 젖혀졌다가 회복될 때
스프링 효과로 포자들은 방출되는 것이다. 
 
환대의 포자 방출 이미지를 떠올리며
봄은 튀어나와(spring) 보게(봄)됨을 연결한다.
봄의 아쉬움을 포자 방출 이미지를 떠올리는 시니어의 마음이다.

 

층층지네고사리 환대

 
층층지네고사리 포자낭이 익어 삼각대를 설치하고 접사렌즈를 마운팅했다.
심혈을 기울어 접사 촬영을 하면서 뷰파인더를 확인하길 반복했다.
어느 순간 뷰파인더에 나타난 벌레들 때문에 깜짝 놀랐다.
 
층층지네고사리 뒷면에 지네들이 꼬불꼬불 모여 있는 것이라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환대의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다.
 
현미경이 아닌 카메라로 환대를 촬영한 기쁨이 숲에 울려퍼진다.
환대를 텍스트로 이해하려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데
벌레 모양의 이미지에서 환대는 선명히 떠오른다. 
 
유튜브에서 환대의 포자 방출 동영상을 보면서 찬탄했었다.
그런데 내가 촬영한 사진 속에 환대가 보인다니
고맙다, 벌레들아, 내 눈에 나타나주어서

 

층층지네고사리 포자 방출 후 모습


층층지네고사리의 다른 잎 포자낭은 포자가 방출된 후의 모습이다.
역광으로 보니 "이중섭의 게" 그림이 떠오른다.
서귀포는 이중섭이 잠시 머문 곳이고,
거주했던 초가집도 재현해 놓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꽃이 좋아 제주살이 하면서 여러번 이중섭 거주지를 찾았다.
그래서 층층지네고사리 포장낭군에서 바로 이중섭을 떠올렸던 것이다.
게들이 바글바글 이중섭을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층층지네고사리 환대

 
전형적인 고사리 포자낭은 0.25mm 정도로 아주 얇은 막의 구형인데
그 주머니 위에 한 줄로 늘어선 세포들이 바로 환대이다.
환대 세포들의 내벽은 어둡고, 외벽은 밝다.
 
어두운 색의 내벽에 의해 환대가 마디가 된 것처럼 보이고
그 모습이 벌레를 닮은 모습이기도 하다.
그 벌레가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재빨리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상상하면
환대에서 포자가 방출하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양치식물 자연사(p.46)에는 
"허공으로 2.54cm 이상 튀어오르는 포자의 모습은
마치 팝콘이 튀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포자낭 속에는 64개의 포자들이 들어있는데
64마리의 벌레들이 고개를 들썩이는 동작들은
난장이 나라에서 투석기로 적군을 물리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동작들이 고사리 잎 뒤에서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손을 퍼트리며 살아남으려는 고사리의 치열한 의지를 본다.

양치식물 공부는 자연의 신비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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