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우연히 후줄근한 핑크프로이드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가 검정 가디건에 검은 바지까지 입었다면, 그건 분명 나일 겁니다.
옷은 선택의 즐거움입니다. 그랬습니다. 선택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었을 때, 비움을 배웁니다. 옷장은 빌수록 더 풍성해집니다.
편한 건 여러 개 사둬야 합니다. 갈아입어야 하고,
낡으면 버려야 하고, 여하튼 단종되기 전에 미리 사둬야 합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건, 같은 것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어서 바꿔야만 한다는 건, 왠지 슬픕니다.
행거 하나, 그거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옷이 나의 생각을 드러낼 때 나는 가장 나다운 내가 됩니다.
옷장은 필요 없습니다.
행거 하나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