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식물이 된 아빠

마지막, 이 이야기의 시작

by 깊고넓은샘

예전에 '넝쿨식물이 된 아빠'라는 동시를 읽었다. 너무도 강렬한 인상에 노트에 옮겨 적어 두었다. 이 시가 이번 연재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이 시가 임수현 시인의 동시라는 사실을, 내가 문학동네 동시집에서 읽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의 일부를 같이 볼 텐데, 내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




넝쿨식물이 된 아빠

임수현


자고 일어나니
아빠가 식물로 변해 있었어요
잎은 어긋나고 줄기는 가늘어져
물을 줘도 파릇파릇해지지 않아요

엄마가 젖은 수건으로
잎사귀를 정성껏 닦아 줘요
넝쿨 넝쿨 올라간 마른 줄기 때문에
우리 집은 그늘이 많아졌어요
나는 아빠가 꼼짝 않고 수액을 받아먹는 게
무서웠어요


이하 생략



작은 아버지는 당뇨를 앓으셨다. 점점 몸은 마르고, 기운이 없어 늘 누워계셨다. 당연히 일을 할 수 없어서 작은 어머니가 생계와 집안일을 모두 책임지셨다.


환자가 안방에 누워 있는 집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꿉꿉한 냄새와 우울함, 그리고 무기력함. 가족들은 생기를 잃고 말라 들어간다.


이 시에서처럼 우리 집에 그늘이 생길까 난 두려웠다. 나도 넝쿨식물이 되면 어쩌지. 내가 이 가정의 짐이 되는 날이 올까 봐 불안했다.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했다는 건 자녀의, 혹은 배우자의 생각이지 환자 본인의 생각은 아니다.


난 짐이 되기 싫었다. 내가 부담이 되고, 기회를 뺐고, 우울함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선 건강 관리를 잘해서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건강한 날을 하루라도 늘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투자하겠다.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의 돈, 시간, 노력, 다 투자한다.


다음으로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남긴다. 근교로 여행도 다니고, 캠핑도 다니고, 나비도 잡고, 매 순간 아이들과 함께 한다. 사진을 찍고, 정리해서 사진첩을 만든다. 나중에 볼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나의 마지막은 짧고 명쾌하기를 기도한다. 좋은 기억, 기쁜 기억만 남기고 싶다.

부디 내 마지막은 모두의 축제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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