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의 작은 동네 풍경들.
새학기가 시작됐다.
지난 겨울 방학동안 그토록 개학일을 기다렸건만.
정작 아이는 등교첫날 아침에 한다는 소리가 글쎄,
엄마, 여름방학은 언제야?
이것은 둘째아이 입에서도 똑같이 나왔다. 두둥.
나 원 참.
아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두 녀석을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집어넣은 나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등교하는 큰아이를 보려고 창밖을 내다보니, 교복 입은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가 한창 좋을 나이. 그들에겐 개학도 그리 나쁘진 않겠구나 싶다.
오전 아홉시가 넘어가자 톡이 울렸다. 어느 정도는 다들 등교, 등원을 무사히 마쳤을 시간.
언니, 애들 등교 잘했지?나 너무 기뻐~ 오늘을 엄청 기다렸잖아!! 두 달 넘게 애들 치닥거리 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드디어 해방이다!!!
큭큭.
거 봐, 이 동네에서 기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지.
알지 알지. 나도 어제 큰애 학교준비물을 챙기는데 그렇게 신나더라구. 65색이나 되는 색연필을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다 깎아줬잖아. 색연필, 네임펜, 물티슈, 필통 등등 필요한 물품을 책가방에 다 싸주고나니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그거 완전 공감. 언니 얼른 XX카페로 와. 우리 커피 수혈해야지~ 그동안 애들때문에 제대로 수다도 못 떨었잖아. ㅇㅇ이 엄마랑 ㅇㅇ이 엄마도 부르자. 그래도 되지?
내 뱃속에서 낳은 아이인데 며칠만 끼고 있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지경이니. 방학 중 삼시세끼는 왜그리 더 힘든 건지. 특히나 긴긴 겨울 방학은 엄마의 도닦는 시간이 되다니. 참으로 미스테리하다. 이래서 선생님이 미치기 직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치기 일보 직전에 개학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걸까. 웃픈 농담이다. 하지만 양육이 그만큼 어려운 종목이다.
카페에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점심먹으러 식당에 갔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이번엔 전화벨이 울린다. 그 사이 벌써 큰 아이는 하교를 했고, 피아노학원에 가 있을 시간이었다.
그 반은 담임선생님이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이라면서요? 옆동네 ㅇㅇ초에 계셨다고 하던데. 아, ㅇㅇ이 엄마가 거기 살다가 작년에 이사왔잖아요. 오늘 작은 아이 입학식이라 학교갔다가 봤는데 아는 선생님이더래요. 3반은 작년에 3학년 3반 담임이셨고, 우리반은 6학년만 맡으시다가 이번에 처음 5학년 내려오셨대요. 남자 선생님이라 엄청 무섭다고 들었는데, 애들 큰일났어요. 그래도 뭐 잘 지내봐야겠죠. 학기초 상담하러 꼭 가보려구요. 아, 아랫집 아이가 올해 입학을 했는데 소집일에 왔던 어떤 애가 그새 이사를 가서 신입생이 한 명 줄었대요. 가뜩이나 이동네 애들도 없는데 진짜 큰일났어요. 아, 지금 바쁘세요?밖이신가봐요?
이번엔 학교 선생님들에 관한 소식이었다. 우리 동네 소식통인 ㅇㅇ이 엄마는 가끔 내게 이런 전화를 한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도 이 작은 동네가 어찌어찌 돌아가는지 다 파악될 정도의 정보량이다.
3월 첫날은 해마다 이렇게 정신없고 시끄럽게 지나간다. 비학군지에 작은 동네인 우리동네 커피숍은 학기초 일주일 내내 오전 아홉시면 엄마들로 자리가 만석이다. 이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카페는 더 북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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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학기 첫날은 사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왜 그 날 했는지 살짝 후회될 정도로 제대로 챙기는 해가 없을 지경이다. 그땐 아마 신학기가 이렇게 바쁜 줄 몰랐겠지만. 그래도 아이 학원에서 챙겨준 결혼기념일 케이크 덕분에 잠시나마 숨을 돌려 본다.
어쨌든, 새학기 모두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