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천천히.
아이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가끔 어른도 돌아버리게 만드는 문제들이 나온다. 그럴때 아이가 머리카락을 움켜쥔 것이 시작이었다.
너 이러다 대머리된다.
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다음엔 손톱을 물어뜯는다. 무슨 불안증세가 있는 아이처럼 손톱을 물어뜯길래 손을 탁 쳤다. 그리고나서 버릇들이 없어진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나 머리카락은 대머리될까 봐 못 뜯겠고, 손톱은 태권도 관장님이 월요일마다 손톱검사하시니까, 물어 뜯은 자국있으면 혼날 것 같아서 안 되고. 근데 스트레스 받을 땐 뭐라도 해야하니까 발가락 운동을 해.
어떻게?
이렇게. 학교에선 양말 속이라 잘 안 보여.
아이는 나에게 엄지발가락과 두번째 발가락을 지그재그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것도 버릇되면 곤란해. 가능한 한 안하는 방향으로 해 봐. 근데. 요새 공부가 그렇게까지 스트레스야? 나중에 고등학생 되면 그땐 스트레스 말도 못 할 텐데.
몰라. 학교가는것 자체가 스트레스야. 공부할 건 뭐가 이리 많아?
아이는 5학년인 지금도 학원이라곤 피아노치고 태권도만 도는데. 공부 학원은 싫다고해서 엄마표로 나를 갈아 넣고 있는데. 정작 스트레스는 본인이 다 받는다니. 새학기 되고는 적응하라고 요샌 푸쉬하지도 않는데. 살짝 어리둥절 하긴 했다. 그래도 뭐. 본인이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할 말이 있나.
엄마, 내가 생각해봤는데 공부 방식을 좀 바꾸면 어떨까? 하루에 과목을 딱 두 가지만 정해서 집중적으로 하는 거야. 어때? 그리고 엄마는 이제 채점만 해 줘.
뭐, 네 공부니 네가 결정하는 거지. 좋아, 뭐든 해 봐. 어떤게 너에게 맞는 방식인지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자.
아이는 씨익 웃었다.
엄마, 나 진짜 공부 잘해서 성공하고 싶어. 근데 대체 공부는 누가 만들었을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도 공부욕심을 부리는 아이를 보니 씁쓸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고작 십년 산 아이들이 이런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게 맞는 걸까.
비학군지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잘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제는 친구들의 시선도 의식할 테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예민해서 그게 늘 걱정인데. 너는 거기에 승부욕까지 있구나. 그렇게 스트레스받아가며 하는 공부라니. 그렇다고 다 필요없으니 공부를 집어 치우라고 할 수도 없고.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