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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Oct 08. 2024

건빵과 별사탕

퍽퍽한 그리움

 여느 때 같으면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한참이 지나야

집에 오는 언니의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오는 길에  고무줄놀이, 비석치기, 공기놀이 등

수많은 유혹들을

물리치고 집으로 한달음에 오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퍽퍽한 "건빵" 때문이다.


 한 개를 통째로 먹지 않고 앞니로

반을 쪼갠다음 오물오물 야무지게

두 번에 걸쳐 먹다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두세 개씩

한꺼번에 몰아넣는다.

"컥컥!" 목이 메어서 이미 입안에서 가루가

 된 파편들이 다시 밖으로

줄행랑을 치고 나온 다음에야 "물!" 하고 외치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야만 멈추게 되는 언니의 "건빵사랑"


그 건빵사랑의 원인제공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나이 터울이 너무 많아서

낯설기만  하나밖에 없는 오빠,

너무도 어려운 사이인 잔소리쟁이 오빠다.

오빠가 군복무를 하기 위해 집으로 오던 날,

샴푸를 사가지고 왔다.

엄마는 학생이 무슨 돈으로 샴푸까지 사 왔냐며

뭐라고 하시면서도

그 즉시 언니와 내 머리를 번갈아 가며 억지로 감기셨다.

부들부들 촉감이 너무도 좋아서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음날부터 일어날 일들을

언니와 나는 알리 없었다.

그때 당시 오빠는  "방위"라고 불리는 출퇴근 하는 군인이다.

아빠 기상시간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오빠는 새벽부터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로

깨우기 시작했고 겸상을 하지 못하는 우리는

오빠의 밥상에만 도도하게 올라가 있는

고기반찬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엄마는 군인이라서 더 잘 먹어야 한다며 철없는

 우리 자매를 나무랐다.


오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밥상을 차리는

 엄마를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고

우리는 그런 오빠가 얄미워 어떻게 하면 골탕 먹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언니가 먼저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오빠가 퇴근할 때 가져오는 건빵 때문이다.

언니는 오빠가 오는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알고

벌써 동네 어귀에 나가있다.

오빠는 건빵을 왜 안 먹고 가져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손에 꼭 들려져 있었다.

언니는 달려가지만 이내 손에 든 건빵 봉지만 잽싸게 받아서 집으로 줄행랑을 친다.

언니 눈엔 오빠가 보일리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건빵 봉지를

고사리 손으로 야무지게 뜯던 언니가

봉지 안을 들여다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건빵 봉지를 거꾸로 들고 마루 위에 탈탈 털어댄다.

다른 때 같으면 건빵 봉지에 손도 못 대게 하는 언니인데

이상한 행동을 하여 무슨 일인가 싶어

나뒹그라진 건빵을 보다가

나 또한 깜짝 놀랐다.

형형색색 별사탕이 건빵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언니는 건빵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주 작아서 집어지지도 않는 별사탕 하나를

입에 넣더니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다.


나도 얼른 그중에 예쁜 색깔을 골라 입에 냉큼 넣었다.

엄마가 술빵에 넣는 설탕 맛보다 뭔가 오묘한 맛이 있었고

성질 급한 내가 "와그작!" 씹었더니 언니는 눈을 흘긴다.

오빠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더니

오늘부터 새로 나온 건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별사탕은  건빵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양이다.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ㆍㆍㆍ


언니는 그 와중에 내일 학교에 자랑하러 가지고

간다며 주섬주섬 챙긴다.

건빵 몇 개에 겨우 별사탕 하나 씹는 형국이지만

퍽퍽한 건빵과 별사탕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환상의 콜라보를 이룬다.


그렇게 오빠의 잔소리와,  

건빵과 별사탕의 유혹은 일 년이 조금 지나

오빠의 군복무가 끝나면서 막을 내렸지만

언니와 나는 오빠의 잔소리가 싫으면서도

 건빵과 별사탕은 계속 먹었으면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길거리를 가다가 갓길에서

 건빵을 포대로 판매하는 노점을 보면서

그 퍽퍽한 건빵 만큼이나 달콤한 별사탕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 우리들에겐 잔소리쟁이 오빠였지만

 건빵과 별사탕을 먹는 우리를 보며

검게 그을린 얼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흐뭇하게 웃던 오빠의 얼굴도 함께...

다시 마주 할 수 없기에 참 퍽퍽한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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