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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은 이래서 유지해야 한다

by 윰글 Dec 10. 2024

네 명의 후배와 함께 카페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 한산하던 평소와 달리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로 가득했다. 테이블마다 사람이 차 있었고, 빈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큰 창 옆에 있는 8인석 자리였다. 널찍하고 편하게 앉고 싶어서 그곳을 선택했는데, 덤으로 멋진 풍경까지 눈에 들어왔다. 창가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눈을 뿌리는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일에는 오후 4시와 6시에, 주말에는 저녁 식사 시간(오후 6시~7시)을 제외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눈이 뿌려지는 일정이 배정되어 있었다.

'아, 바로 이거 때문이구나.'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보이길래 이유가 궁금했는데, 크리스마스트리에 눈까지 뿌려준다고 하니 당연히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에 태우거나 아기를 품에 안고 나온 모습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이곳에 시간을 남기고 있었다.


'커피와 빵'

이 카페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 주차장이 넓고,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올라와야 하지만 디저트와 커피 맛이 좋아 그 점을 잊게 만든다. 본 건물은 ‘ㄴ’ 자 형태로 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마시멜로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로가 있고, 그 옆에는 높이 3미터가 넘는 대형 트리 한 그루와 2미터 정도 높이의 트리 일곱 그루가 설치되어 있다. 트리 주변에 설치된 눈 뿌리는 기계를 보며 기대감이 솟았다.


오후 4시

우리가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때, 한쪽에서 카페 마당을 가리고 있던 롤스크린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트리 쪽으로 시선이 갔고, 동시에 카페 안 여기저기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들려왔다. 바로 그 순간, 마당 위로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충청남도에서 9년을 살면서 눈을 지겹게 봤다. 겨울이면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오늘은 눈이 오겠네."라고 예상한 날에는 꼭 눈이 내렸다. 눈발이 승용차 유리를 때리던 날들, 미끄러운 길 위에서 긴장하며 운전했던 순간들, 사고 소식이 들려오고도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했던 현실이 떠올랐다. 설산을 지나며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사 온 뒤로는 눈을 볼 수 없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그토록 싫어했던 눈이 이제는 그립다.


“얼른 가서 사진 찍어봐.”

눈밭에서 지내본 경험 덕분인지 인공 눈을 맞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눈보라가 일며 만들어낸 풍경은 그럴듯했다. 17년 전, 해수욕장 근처에 설치된 아이스링크에서 큰아이의 손을 잡고 눈 맞으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지겹고 춥고 미끄럽기만 했던 눈과의 추억이 이제는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카페 안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몰려나갔다. 눈은 약 10분 정도 뿌려지고 끝났지만, 크리스마스트리는 하얀 눈으로 덮였고 마당은 눈밭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눈은 흙과 섞여 질척거리며 연갈색으로 변했고, 신발 밑은 촉촉해졌다. 그 모든 풍경이 눈이 우리에게 주는 동심처럼 느껴졌다.


'아이와 강아지'

눈이 오면 가장 좋아하는 존재는 아이와 강아지라고들 한다. 하지만 어른도 다르지 않다. 인공 눈발에도 ‘우와’ 하고 감탄하며, 아이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손을 끌어당긴다. 머릿속은 온통 비현실적인 감성으로 가득 차고, 그 시간 동안은 이상(理想)의 세계에 빠진다.

누군가는 옆에서 ‘사랑한다’고 속삭였을 수도 있고, 용기를 내어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동심이 주는 선물이다. 돈 한 푼 생기는 것도 아닌데 즐거워하고, 보여준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끊임없이 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이’로 돌아간다.

누구든, 어디서든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느꼈던 것처럼, 가끔은 ‘아이’가 되어보자. 지금 몇 살이든 무슨 상관이랴. 동심은 나를 변하게 한다.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에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게 하고, 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잠시라도, 충분히. 그리고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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