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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윤 Dec 27. 2024

9. 베고니아 꽃: 짝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서투른 고백

점심시간의 복도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친구들이 급식실로 몰려간 덕분인지, 유나는 지호의 교실 앞에 서서도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꽃무늬가 들어간 작은 가방 속에는 아침부터 준비해 온 진분홍빛 베고니아 화분이 있었다.
"이걸 건네면 지호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유나는 가슴이 뛰는 걸 진정시키려 애쓰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지호는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나는 살며시 교실로 들어가 지호의 책상 앞에 섰다. 지호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더니 유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유나야? 무슨 일이야?"
지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유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복도를 따라 조금 걸은 뒤, 학교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평소에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라, 둘만의 대화에 딱 알맞았다.

유나는 손에 든 가방을 열고, 화분을 꺼내 지호에게 내밀었다.
"이거, 너 주려고 준비했어."
지호는 당황한 듯 베고니아를 받아 들고, 유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건... 무슨 뜻이야?"

유나는 심호흡을 하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마음속에서 숱하게 연습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호야, 사실... 어릴 때부터 너를 좋아했어."
지호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유나를 바라봤다.

"어제 너의 고백을 듣고 나서...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어.
근데 사실은... 나도 네 마음이랑 같아."

유나는 머뭇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널 보면서 많이 웃었고, 네가 힘들 때마다 내 마음도 아팠어.
근데 내가 너무 겁이 많아서... 네가 먼저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래서 이번엔 내가 네게 대답하려고 했어."

지호는 유나의 고백을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베고니아 화분을 들고 선 채로, 그의 눈은 믿기지 않는 듯 유나를 향해 흔들렸다.

"유나야... 정말로?"
지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응, 정말이야. 나도 너 좋아해. 오래전부터."

그 순간 지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는 화분을 소중히 끌어안으며 유나를 바라봤다.
"너무... 너무 고맙다.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유나는 지호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떨림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따뜻함이 채웠다.

"내가 더 고마워. 네가 먼저 용기를 내줘서. 나, 이제부터 더 솔직해지려고 해."
유나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학교 뒤편 정원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떨림 속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느덧 웃음으로 채워졌고, 그날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다.

유나와 지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호의 손에 들린 진분홍빛 베고니아가 바람에 살며시 흔들렸다.
베고니아의 또 다른 꽃말이 지호의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순간,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길 기다리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보답받는 것처럼, 세상은 둘만을 위한 빛으로 물들었다.

"베고니아의 꽃말처럼, 그들의 마음은 이제 서로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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