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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울 Sep 01. 2024

펑펑 울어보기

이렇게 울어보는 것. 가끔은 나쁘지 않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이유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냥 내가 너무 스스로 안타까웠습니다.

열심히 산 것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한 걸요. 스스로에게 이건 경험이니까를 수없이 외치며 이겨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해져 봅니다. 나 자신에겐 숨기지 않는 날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웁니다.

걸으면서 울어봅니다. 너무 속상해서 너무 소중한 내가 안타까워서 울어봅니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감정이 몇십 년 만에 폭발하듯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에게 내 울음소릴 들려주고 싶지 않아서 조용하게 눈물만 쏟아집니다.


그렇게 울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온 곳이 저에겐 익숙한 곳들 뿐입니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선 자신이 가봤던 곳을 가나 봅니다. 익숙한 장소를 가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들이 내 곁에도 영원히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속상하지만 사람마음처럼 되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잘해주고 상대를 위하는 행동을 해도 시간의 벽 앞에서는 그저 작은 날갯짓이었습니다. 옛 기억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가장 쓸모없는 게 과거에 대한 후회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단지, 내가 한 선택으로 지금 삶이 정해진 것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지금 이 감정들을 잊지 않을 겁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자부할 순 없더라도 예전을 되돌아봤을 때 지금보다는 더 조금 후회하기 위해 살 것입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도 이제는 그만할 겁니다. 이렇게 하염없이 운다는 게 좋은 감정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바보처럼 나조차 숨겼나 봅니다. 여린 내가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한 줄만 알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 적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왜 나를 챙기기 전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겼던 걸까요? 내가 생각하기에 나 자신이 선물을 받을 만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무관심했던 걸까요.    

  

지나가다 본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조금이나마 서럽던 제 마음을 달래준 것 같습니다. 더는 나에겐 느낄 수 없는 순수한 감정이 전달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웃어주고 잘해주면 이제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작은 웃음이 딱딱했던 마음의 벽에 틈을 만들어준 느낌입니다. 마치 이제는 숨기지 말고 솔직해지라고 조언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 아이의 웃음이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멈춰있던 발걸음을 움직입니다. 이 발걸음이 잠시나마 멈추는 일이 있더라도 제자리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늦더라도 조금씩 한 발짝씩 나아가다 보면 지금의 펑펑 우는 나를 위로해 주는 내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 시절 넌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애썼고 할 만큼 했다고 그러니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열심히 살았던 증거라고. 결과는 없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발판이 맞았으며 너의 의심들은 확신이 된 순간이라고 그렇게 위로해보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돼 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기 전 나부터 나를 사랑해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아끼고 예뻐해주다 보면 분명 나만큼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올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받는 사랑만큼 그 사람의 사랑도 아껴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30년 뒤 나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해줄 것 같네요.


오늘도 나를 아껴줍니다.

그런 사람이 편하게 올 수 있도록.

아껴봅니다.


#나

#울어보기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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