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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国)

by tricky boy Feb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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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이 한 문장은 설국의 배경지인 니가타현이 어떠한 곳인지 독자에게 강렬하게 상기시켜 주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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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소개 및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은 도쿄 출신의 시마무라라는 남자이다. 그는 집안의 재력 덕분에 결혼 후에도 돈 걱정 없이 한량처럼 살아간다. 그가 눈의 고장인 니가타현까지 먼 거리를 떠나는 이유는 어린 게이샤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고마코는 19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년 반 전 남편이 죽은 후 생계를 위해 게이샤의 일을 꾸준히 해온 인물이다.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다. 고마코 역시 시마무라에게 애정을 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복잡한 이유로 인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처음에는 시마무라에게 아내가 있는 점 때문에, 단지 게이샤와 손님 사이의 관계로만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시마무라는 ‘한량’이라는 삶을 즐기며, 무위도식하고 자주 홀로 산행을 즐기는 인물이다. 그날 밤에도 그는 국경의 산을 돌아다니다가 온천장에서 한 게이샤를 불렀는데, 바로 고마코였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순수하고 결백한 고마코보다는, 양심의 가책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여자를 원했다. 이는 그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한량으로서, 감정적으로 얽히게 되면 자신의 자유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내적 갈등의 결과였다. 그렇지만 애초에 그는 고마코를 원했기에, 여러 번 주저하다가 결국 다시 그녀와 만나게 된다. (그가 고마코 외의 다른 게이샤를 불렀던 것도, 고마코와의 관계가 우정 이상의 감정적 요구나 심화로 발전하는 것을 회피하려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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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간의 감정과 내면의 갈등

고마코는 단순히 육체적인 매력 때문에 시마무라에게 애정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녀가 보여준 감정적 진지함과 헌신이 그로 하여금 깊은 애정을 느끼게 했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의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다가갔고, 비록 시마무라가 한때 “곧 다시 만나러 오겠다”, “무용 책을 보내겠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그를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온몸으로 그리워했다.

고마코는 상대방이 필요할 때 다가가고, 그가 원할 때 물러나는 성숙한 태도를 보인다.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고마코의 말투 때문인지, 그녀가 감정적으로만 시마무라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단순히 어린아이처럼 감정적으로 상대방에게 무작정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며 감정의 복잡함을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생계를 이어왔으며, 자신의 직업인 게이샤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시마무라에게 고마코의 성숙함과 진정성을 더욱 부각했다. 예를 들어, 고마코는 약혼자인 유키오의 임종보다도 시마무라와의 만남을 더 중요시하였고, 재회 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품은 사랑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자신의 자유로움과 허무주의적 태도 때문에, 이러한 사랑 자체를 헛수고로 치부한다. 그는 삶의 본질적 의미나 목적, 가치를 부정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함을 잃은 채 살아간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로 치부하는 나 자신이 지닌 허무함”과 같이, 시마무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무력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허무주의 속에서, 고마코의 순수함과 헌신은 시마무라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거역하기 힘든 슬픔”이라는 그의 말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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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물 – 요코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소설의 또 다른 게이샤, 요코가 등장한다. 고마코와는 달리 요코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작중 “청명하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라는 묘사와, 시마무라가 “밖으로 나오고서도 요코의 눈길이 그의 이마 앞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은, 요코가 설국의 고요하고 차분한 자연 배경 속에서 신비롭게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코는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으며, 오히려 시마무라에게 그녀가 이상적인 존재로 남는다. 그는 갈등이나 책임을 수반하는 강렬한 감정보다, 이상화된 아름다움 속에서 무게감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성향을 반영하듯, 요코의 존재에 매료된다.

요코는 또한 유키오라는 남성을 병간호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유키오가 죽은 후에도 무덤을 찾아 헌신하는 모습은 그녀의 진실된 사랑과 헌신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사고로 인해 요코가 죽게 되는데, 이는  시마무라에게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며, 인간의 노력과 사랑이 결국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이는 설국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허무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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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설국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뛰어난 문체와, 니가타현의 자연경관을 마치 직접 체험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과 내면의 갈등, 그리고 허무주의적 삶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설국은 단순한 사랑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와 삶의 덧없음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내가 동경하는 훈련소 친구가 추천하는 소설이다. 다음에 꼭 같이 설국의 배경지인 니가타현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니가타현은 또 사케와 온천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온천을 즐기고, 나와서 사케 한 잔을 먹는 상상을 하니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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