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안부 전하던 은행나무
바람 짊어질 때마다
노랗게 물든 웃음 뿌린다
밤새 별이 놀다간 가지에는
기억을 저장하는 옹이가
하나 둘 켜지고
눈꽃 만개할 채비 마친 둥치는
탈곡된 언어를 이정표에 새긴다
무채색 저녁의 무게 삭여 지켜낸
순한 걸음이 만든 세상
겨울의 절정에 피는 꽃이 봄
이라는 속설은
별과 은행나무와 복수초가
누대로 이어온 얼음의 계보였을까
기다림이 있는 시간은 달다
색 바랜 표지 들추며
나란히 걷는 내 발길 위에도
곁불 쬐며 옹기종기 둘러앉은
잎새들 정담이 따사롭다
정성껏 매만진 은행 한 다발 놓고
시장통에 동그마니 앉은 할머니
눈가에도 눈꽃이 꿈처럼 영글었다
은행잎 나풀나풀
할머니 굽은 등을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