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무줄로 나를 묶었어?

대학병원에 다녀와서

by 꿈꾸는 감자

동이 틀 무렵 아이가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마가 있는지 손으로 확인한다. 옷 끝을 조금씩 꼬집어가며 엄마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하지만 난 모르는 척한다. '좀 더 자도 된다. 더 자자.' 속으로 전파를 보내보지만 아이는 내가 일어나지 않자 말을 건다.

"엄마 나 큰 병원에서 많이 아팠어!"

갑자기 한 달 전에 병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나 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달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까지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하함 ~많이 아팠어?" 하품을 하며 막 일어난 척을 했다.

"응. 다시는 큰 병원에 안 갈 거야."

"그래.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찌깐이는 2년에 한 번씩 큰 병원에 가야 한다. 아이가 말한 큰 병원은 대학병원인데 그곳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이유는 신장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선천적 기형아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뿐인 신장이 건강한지를 2년마다 추적 관찰을 한다. 그때가 저번달에 받은 검사였다.


2살 때 받은 검사는 아이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다행이다. 작은 아이인 찌깐이는 혈관까지 잘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간호사 두 명이 붙고, 배드에 아이를 포박하듯 묶었다. 찌깐이 아빠와 나까지, 총 넷이 그 아이의 혈관에서 피를 뽑겠다고 40분을 고군분투한 사실은 나만 기억하고 싶다. 그때 진땀을 얼마나 뺐던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어른들이 찌깐이에게 못된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이는 처절하게 울고 발버둥 쳤다. 그 힘든 일을 4살이 되었으니 또 해야 했다. 병원 가기 한 달 전부터 나는 그 일이 떠올라 어떻게 잘 채혈할 수 있을까 궁리만 했다. 또 채뇨도 보통일이 아니다. 2년 전에는 기저귀에 소변을 보던 때라 소변 받기가 쉽지 않았다. 여아용 소변백을 붙여놓고 소변이 고이면 빼내는 것인데, 이것이 쉽게 새 버린다. 채뇨가 잘 되었다고 해도 살에 붙은 접착테이프가 잘 떨어지지 않아 여린 살을 아프게 한다. 쉽게 새 버리면 또 붙이고, 또... 반복해 아이를 더 아프게 했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나는 또 죄인이 된다.

이번엔 소변백을 붙이지 않아서 다행 이었지만, 유아용 변기를 병원까지 싸들고 가서 채뇨했다.

채혈과 채뇨 및 초음파는 모두 공복에 이루어진다. 아침에 물도 못 마시고 소변을 자꾸 보라고 다그쳤다.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었던 나는, 이날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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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무줄로 나를 묶었어?"

한 번도 생각 못했다. 나도 채혈을 가끔 해보았지만 왜 고무줄로 묶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다.

20초.. 엄마는 생각 중...

"엄마 생각엔 우리 몸속에 피가 돌아다니니까 고무줄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은 것 같아.

그래야 멈춰 있는 피를 뽑을 수 있지."

"피를 왜 뽑아?"

"찌깐이 몸속에 세균 벌레들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뽑는 거야. 세균벌레 없이 건강하다고 했어."

"피는 무슨 색이야?" 넘어져서 피가 났던 기억이 잘 안 나나 보다.

"빨간색이지."

"피는 왜 돌아다녀?"

"찌깐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가 돌아다니면서 움직이게 하는 거야."

슬슬 질문이 많아지니 피곤해졌다.

"피가 안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는 거야?"

"움직일 수가 없어. 심장도 멈추고 다 멈추는 거야."

찌깐이는 이 말이 죽는다는 것인지 알아들었나 보다.

슬픈 눈으로 말했다. "엄마 쓰러지지 마. 죽으면 안 돼."

"응 알겠어.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갑자기 운동도 게을리한 채 살이 찐 내 몸이 미안해졌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해야겠구나.


아이가 누워서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눈도 꼭 감았다.

"엄마 나 안 움직이지. 나 죽었어?"

웃음이 났다.

"어? 콧구멍이 벌렁이네. 배도 오르락내리락. 눈도 움찔움찔 움직이네. 입도 움직여서 말도 했네."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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