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돈은 빚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제목은 '돈은 빚이다'이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돈이 왜 빚일까? 내 지갑 속의 현금은 분명 내 것이고, 어디에도 빚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받아 그 돈을 바탕으로 대출을 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은행은 대출을 실행하는 순간 돈을 창조하며, 대출받은 돈이 다시 누군가의 예금이 되는 식으로 통화량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최상단에는 중앙은행이 있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할 때, 담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담보물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다. 즉, 정부는 신용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면서 새로운 화폐를 공급한다. 결국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기 위해 먼저 빚을 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진 빚은 원금과 이자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 정부가 빚을 갚는 방법은 세 가지다.
세금을 더 거둬서 갚는다.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기존 국채의 원리금을 상환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은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오기 쉽다. 하지만 세 번째 방법인 인플레이션은 비교적 조용하게 빚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의 실질 가치는 하락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서서히 체감하기 때문에 반발이 크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활용해 부채 부담을 낮춰왔다.
뒤바뀐 운명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빚을 갚아줄 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해도 최초에 빌린 원금과 원금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명목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의 가치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면 인플레이션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에게는 지옥이지만 채무자에게는 천국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1919~1923년) 사례는 이 같은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부담해야 했다. 세금으로 전쟁배상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독일 정부는 통화량을 대규모로 증가시켜 전쟁배상금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대규모로 늘어난 통화량은 독일의 물가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다. 1923년 4월 1달러의 가치는 2만 마르크였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인 1923년 11월 20일에는 1달러와 교환하기 위해서는 4조 2천억 마르크가 필요해졌다. 이로 인해 노후를 위해 열심히 예금 등의 저축을 해온 독일 국민의 재산은 휴지조각이 됐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빚을 내고 실물자산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벌인 사람들은 헐값에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화폐 조작과 경제 붕괴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왕 히에론 2세는 자신의 왕관이 순금인지, 아니면 은이 섞였는지 의심했다. 이에 왕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게 왕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이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을 물에 담갔을 때 넘치는 물의 양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고, 이를 활용해 왕관의 밀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왕관에는 은이 섞여 있었으며, 왕을 속이려 한 금세공자는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기 적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기원전 3세기부터 이미 사람들은 금속 화폐의 순도를 조작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주체가 금세공자가 아니라 정부가 되었다.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2세기 무렵부터 게르만족의 이동, 무리한 공공 지출, 군사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했다. 국고가 부족해지자 로마 정부는 세금 징수 증가와 지출 절감 같은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보다 쉬운 해결책을 선택했다. 바로 화폐의 금속 함량을 줄이는 것이었다. 기원전 211년에 발행된 데나리우스는 초기에 은 함량이 95%였으나, 점점 줄어들어 3세기말에는 급기야 은함량이 5%도 채 안되더니 결국 은화 제도가 폐지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더 이상 로마 정부가 발행한 화폐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을 거래 수단으로 선호하기 시작했다. 종전에는 은화와 금화가 사라지면서, 로마 경제는 점점 물물교환 중심의 경제 구조로 퇴행했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동안, 로마제국에서는 불과 50년 동안 26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했다. 결국, 화폐 가치 조작을 통해 단기적으로 재정을 유지하려던 시도는 장기적으로 경제 붕괴를 초래했고, 로마제국이 쇠퇴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돈
1929년 대공황으로 전례 없는 경제 침체를 겪은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공지출을 통한 총수요의 진작으로 당시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런데 공공지출을 충당할 재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뉴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정부 지출의 이면에는 1933년 4월 5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 6102호(Executive Order 6102)가 있었다. 이 명령으로 미국 내 개인의 금 소유가 전면 금지되었고, 정부는 금을 1온스당 20.67달러에 강제 매입했다. 이후 시장에 있는 금을 모두 회수한 뒤, 금 가격을 1온스당 35달러로 인상했다. 달러의 구매력은 정부에 의해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사실상 세금을 징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공황의 위기를 넘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달러는 여전히 금과 교환할 수 있는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과 대규모 사회복지 프로그램(Great Society 정책)으로 과도한 재정지출을 감당해야 했던 미국은 달러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는 유인을 제공했다. 특히, 1965년 프랑스에서 대량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가면서 미국 내 금 보유량이 급감하자, 결국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는 금본위제 이탈을 선언했다. 바야흐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부터 정부는 금이나 은의 보유량에 화폐 유통량을 발행해야 한다는 족쇄 없이 화폐를 발행해 재정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플레이션을 통해 화폐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달러를 금과 같은 준비자산으로 교환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통화안정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될 것이다
<닉슨 대통령, 다만 일시적으로 중지된 금태환은 영구적으로 중지되었다>
지폐의 탄생과 금융 혁명
1716년, 프랑스에서 현대적인 지폐 발행 시스템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태생의 경제학자이자 금융가 존로는 프랑스 정부의 허가를 받아 뱅크 제너럴(Banque Générale)을 설립했다. 이는 최초로 체계적인 지폐 발행을 시작한 은행이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금속 화폐(금화·은화)를 기반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속 화폐는 이동과 보관이 불편하다는 점 외에도 정부가 전쟁이나 공공사업으로 재정이 부족할 경우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존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과 은을 담보로 한 지폐를 발행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종이에 숫자만 적으면 즉시 화폐가 될 수 있었고, 이는 정부의 부채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무리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악화된 상태였다. 루이 15세(당시 5세로 필리프 오를레앙 공작이 섭정으로 통치)가 즉위했을 때는 과도한 국가 부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존로가 제안한 지폐 발행은 프랑스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는 노다지 사업이었다. 그러나 후대 존로의 화폐 발행은행은 미시시피 버블이라 불리게 되었다.
1716년 뱅크 제너럴의 금과 은을 담보로 지폐 발행을 시작했으나 설립 후 실물 담보 이상으로 화폐 발행
1717년 루이지애나 무역 독점권을 얻은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하여 주식을 발행한 돈으로 국채 인수
1719년 미시시피 회사와 뱅크 제너럴, 서인도 회사가 통합으로 국유화되며, 부채관리 기관 역할
1720년 국가 부채를 갚기 위해 무리한 주식발행과 화폐발행으로 버블이 형성되며 이후 경제 붕괴
이 사건으로 프랑스의 경제가 붕괴되며 훗날 프랑스혁명(1789년)이 촉발되는 경제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오늘날에도 크레디 아그리콜같이 프랑스 은행들 중에서는 은행(Banque)’이라는 용어 대신 신용(Crédi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곳들이 존재한다.
지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볼테르
현대의 인플레이션
존로의 실험은 거품 붕괴로 끝이 났지만, 신용 화폐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은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을 운영하며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 현대 금융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앙정부만큼이나 중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전 세계가 미연준의 통화정책을 주시한 것이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당시 펼쳐진 정책의 부작용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정부가 빚으로 재정지출을 충당하는 한 인플레이션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장에서 중앙은행이 어떻게 금융 시스템을 조정하며,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알아보자.
도서: 인플레이션, 지은이: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출판: 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