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365일
"대한이 소한의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에 언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대한은 24절기 중에 하나로 가장 추운 날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에는 위와 같은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한이 더 춥다는 믿음 있다. 기후위기로 점점 그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대한과 소한 둘다 초봄과 같은 기온이 될 거라 하지만 아직 요 몇 년 간도 체감상 소한이 더 춥게 느껴졌다. 여전히 춥지만 찬바람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은 대한이다.
식혜(食醯, 문화어: 밥감주, 영어: sikhye)는 쌀로 만든 한국의 전통 음료로 일반적으로 식사 후에 디저트로 마신다. 식혜는 쌀밥에 엿기름 가루를 우려낸 물을 부어서 삭힌 후,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어 만드는데 쑥이나 약초 등을 넣기도 한다. 이 식혜를 '감주'라 부르는 지역도 있지만 이걸 한자어 "甘酒"로 바꾼 아마자케는 일본에서는 알콜이 있는 누룩으로 만든 음료수를 뜻하는 말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있는 한국슈퍼에 놓여진 식혜를 소개할 때 식혜=아마자케 라고 오해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우선 대부분의 아마자케는 표면에 쌀알이 떠있는 것은 거의 없고 뽀얗고 기포가 조금 섞인 점성있는 음료일 경유가 많다. 또 단 맛의 단계도 제작사에 따라 많이 다르고 지방의 작은 가게들에서도 각자 만든 오리지널 제품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에서 상품화된 식혜하면 대형식품회사의 유명한 상품표가 딱 하나 떠오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아마자케는 알콜 없음 있음이 크게 표기 되어있고, 유산균의 효용을 운운하며 건강식품으로 광고해서 파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마지막으로 식혜는 차갑게 해서(겨울에도!) 먹는게 대부분인데 아마자케는 차가운 것도 뜨거운 것도, 상온에 두고 있는 것도 있다. 보통 따듯한 걸 떠오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한정식집에 가면 후식으로 나오거나 명절 때 조금 맛보는 정도의 한국의 식혜지만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가끔 접하면 그렇게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설탕이 많이 들어간게 아닌지 엿기름이라는 이런 성분 괜찮은지 조금 걱정이 되는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살얼음 낀 식혜를 가지러 할머니댁의 장독대로 가던 겨울날의 기억은 즐겁기만 하다. 일본의 아마자케는 시골이나 온천마을에 놀러갔다온 친구의 선물이나, 식생활에 관심많고 신경쓰는 친구의 집에서 내어나오거나 하는 정도지만 겨울철 편의점의 음료판매대에서 환하게 불켜져있는 자판기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새해에 절이나 신사를 방문를 방문하면 한 잔에 100엔 정도의 가격에 팔기도 하지만 가끔 새해니까라는 핑계로 무료로 나눠주는 곳도 많다. 큰 냄비에 끓인 아마자케를 국자로 떠내어 종이컵에 담아준다. 친구와 같이 마시면서 소원을 빌러 온 사람들, 새해장식들을 보고 새벽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조금이라도 한 발씩 디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대한은 매년 바뀌지만 대략 1월19일에서 21일 사이라고 한다. 요 근래는 20일이 많아 20일로 작성하였다.
다람쥐 リス (리스)
존중 尊重 (そんちょう)
1월 21일은 다람쥐 존중의 날이다.
일본어로는 평범하게 다람쥐의 날인 リスの日 라고 한다.
Squirrel Appreciation Day 라고 외국의 활동가가
이 시기 먹이를 찾기 힘든 다람쥐들을 위해 지정했다고 한다.
한국인이지만 그다지 도토리묵을 즐겨먹는 것도 아니고 창가에 조금 견과류를 뿌려놓으면 다람쥐나 새들이 먹으러 오는 그런 자연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보니 어떻게 다람쥐를 존중해야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도시 시골쥐(다람쥐도 쥐!지만)답게 비닐과 플라스틱을 가능한 안 쓰려노력하는 등의 작은 실천이라도 쌓아가야겠지...
그러고보니 오늘 조르주 페렉의 책을 읽다가 피터래빗의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다람쥐 넛킨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넛킨과 그의 동료들은 피터래빗 일가처럼 옷을 갖춰입진 않았지만 귀엽고 사람처럼 움직이고 생각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26165
貝 かい 카이 조개
旬の食材 しゅんのしょくざい 슌노쇼쿠자이 제철음식
한류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한국음식을 즐기는 이도 크게 늘어났다.
덕분에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 멀리 한국슈퍼까지 나가야되는 수고로움은 사라지고
근처의 일본로컬슈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게 있어는데 그게 "꼬막"이다.
이름도 귀엽고 맛도 좋은 꼬막은 일본말로는 "하이가이" 라고 한다.
고등어나 멸치처럼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의 슈퍼에도 놓여있는 식재료와 달리 꼬막은 이름조차 생소하고 조리법은 찾아도 전혀 나오지 않을 정도다. (그에 반해 꼬막과 닮은 피조개 "아카가이"는 일본 초밥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똑같은 풍경 똑같은 음식에 잠식되어가는 것 같지만 이런 제철음식 등은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인지 알려주는 것 같아 좋다. 특히 꼬막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자주 등장했던 식재료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억새게 먹고 살기위해서는 뻘에서 꼬막을 캐어내야됐고 중요한 날 차릴 것 없는 살림에도 꼬막무침이라도 올리려고 했던 모습에서 내가 벌교사람이라도 된 것만 마냥 꼬막에 마음을 두는 것이었다.
그런 꼬막이 재작년서부터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슈퍼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꼬막이라고 크게 플랜카드가 붙어있었고 보퉁이만한 3-4개의 자루가 수조안에서 작은 기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족없이 혼자 지내는 도쿄에서 저걸 지고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해 혼자 손질하고 혼자 삶고 혼자 양념장을 만들고 혼자혼자혼자...다 혼자하는 걸 상상해보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져 반가운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없이 같이 나눌 사람없이는 아무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라도 손이 가지 않는거구나 싶었다. 혼자 먹는 향토음식이라니. 문장을 그렇게 늘어놓으니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하다.
チャンドクテ(醤甕台)장독대
かめ(甕)항아리
シッケ(食醯)식혜
スジョングァ(水正果)수정과
아직 모두가 모여서 큰 밥상에 앉아 밥을 먹던 시절. 할머니네 집의 장독대도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다. 고추장이며 간장이며 된장이며 장독대 안에서 잘 익어갔다. 그 중에는 식혜와 수정과도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달디단 음료수가 장류와 같이 보관되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설연휴 전 어느 날 밤. 저녁을 먹고 편하게 쉬고 있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할머니와 같이 장독대로 갔다. 눈이 쌓여있었고 하얀 입김도 나왔지만 그다지 춥지 않았다. 위에 쌓인 눈을 가볍게 쓸고 연 뚜껑을 다른 뚜껑 위에 올려두었다. 눈이 조금씩 뚜껑 안 쪽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항아리 안을 바라보니 살얼음이 끼어있었다. 가져온 바가지로 톡톡 깨어 가져온 용기에 식혜를 옮겨담았다. 쌀알이 눈송이 같이 춤을 췄다. 수정과가 들어있는 항아리도 열었다. 진한 계피향이 났다. 좀 싫지만 계속 맡게 되는 향. 나는 식혜가 더 좋아. 혀와 이빨 끝에서 뭉글어지는 쌀알도 진하게퍼지는 단맛이 좋아.
이제는 가끔 신오쿠보에 있는 한국슈퍼에서 일본어로 가득한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앉아있는 캔과 플라스틱병에 담긴 식혜나, 어쩌다가 간 밥집에서 식후 디저트로 내어주는 큰 통에 담긴 식혜를 접하는 정도라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눈이 오는 날 장독대에서 가져온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할머니가 만든 식혜라면 마시고 싶다.
핫케이크 ホットケーキ
팬케이크 パンケーキ
핫케이크를 굽다 ホットケーキを焼く(やく)
사상 史上(しじょう)
최고 最高(さいこう)
1월 25일 오늘은 핫케이크의 날. 핫케이크의 날.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사상최저기온을 기록한 날을 기념하여 지정된 날로 여느 일본의 기념일과 같이 자신들의 상품을 널리 흥보하기 위한 그런 날일테지만 겨울의 핫케이크...상상만해도 따듯해지고 포근해지는 기분이 들어 굳이 비아냥 거릴 필요는 없지 싶어진다.
핫케이크와 팬케이크는 한국에서만큼 일본에서도 혼용되어서 사용되고 있는 것 같고 '설탕이 들어간 밀가루 반죽을 푸풀리게 구워 먹는 것'은 둘다 포함되는 셈이니 적확하게 유래를 파악하고 나눠써야할 필요성도 굳이 못느끼겠다.
핫케이크하면 일본의 삼대 호텔(고산케) 중 하나로 불리는 "호텔 뉴 오타니"의 핫케이크가루가 유명하다. 슈퍼나 인터넷 상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에서 구입하는 경우
1월23일 한류와 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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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조식으로 그냥 편하게 몸만 가면 먹을 수 있은 팬케이크가 맛있는 건 당연한게 아닐까? 아직 한 번도 못 묵어봤지만 한 번 즘은 숙박하고 아침식사로 쉐프가 만든 팬케이크가 먹어보고 싶다.
솔방울 松ぼっくり 마츠봇쿠리
소나무 松 마츠
열매 木の実 키노미
도서관에 가려 1층으로 내려오니 현관 앞에 밤새 바람에 떨어진 소나무가지가 보였다. 옆에 어린 솔방울이 몇 개 떨어져 있어 무심코 하나 주어들었다. 평소에 이런 일 하는 경우는 드문데 어떤 무의식이 이런 행동을 하게 했는지 의아하다. 솔방울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면서 걷다보니 몇 년간 겨울이 되면 솔방울을 장식으로 썼던 일들이 떠올렸다. 꽃집에서 한 개에 몇 백엔 정도에 팔던 흰 색 금색으로 무심하게 붓으로 칠한 것이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캠핑만화에서 불을 지필 때 솔방울을 쓴다고 했던가, 솔방울하면 역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하던 독재자의 웃기고 실없는 자기선전이지...그런 생각들이 하나 둘 씩 떠올랐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바로 앞의 호수공원에 있는 나무 열매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덕분에 솔방울은 딱 하나의 형태만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곰곰히 생각하면 아주 당연하지만) 형태도 크기도 색도 각양각색인 솔방울들을 비교해서 볼 수 있으니 즐거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양의 솔방울은 아메리카산 '리기다 소나무' 였고, 중국 베이징 주변이 원산지인 '백송'의 것은 좀 투박하긴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 곡선들이 꽤 멋스러워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또 뻐꾸기 시계에 (나무건 플라스틱이건 간에) 달려있던 솔방울은 '독일 가문비 소나무'라고 한다. 길고 얄쌍한 모습이 특이하긴 하다.
평소에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아니 존재자체도 잊고 있던 솔방울에 대해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되다니. 유독 이 계절에 솔방울이 떨어져서 그런가 싶어검색해보니 현대의 도시에서는 계절 상관없이 일년내내 주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계절에 솔방울을 떠올리는 것은 소나무의 푸르름이, 솔방울이 달린 버꾸기의 목소리가 지금 늦겨울 우리를 버티게해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柑橘 かんきつ 칸키츠 감귤
酸っぱい すっぱい 슷파이 (맛이) 신
甘い あまい 아마이 달은
オレンジ 오렌지
みかん 미캉 귤
감귤류는 추우면 추울수록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데코퐁, 한국에서는 한라봉이라고 상표이름을 불려지는 이 시라누이과 감귤도 겨울이 철이다. 달고 맛있고 게다가 크기도 크다. 무엇보다 마치 복주머니의 입구처럼 부풀어오른 꼭지 부분이 복스럽고 귀엽다. 과일와 채소 각각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지고 있지만 한라봉은 특별한 것 같다. 나란히 상자안에 들어가있는 모습을 보면 복이 잔뜩 굴러들은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식단을 한다고 과일을 피했었다. 현대의 과일은 상품성을 위해 여러 번 계량되어 과도하게 당분이 오른 어떤 의미에서는 인공식품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우리가 현대의 숲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인 걸 자꾸 잊는 것처럼 슈퍼에 진열된 과일들 또한 그렇겠지만 설도 가까워지니 잠시 잊고 가족과 맛있게 나눌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