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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행복했다.

아름다웠던 시간

by 나의해방일지

아내와 첫 만남은 특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아내는 통학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당시에 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갈색머리에 보헤미안 풍의 옷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들고 있던 책 너머로 힐끗힐끗 아내를 쳐다보다가, 같은 역에서 내렸다. 나는 버스정거장까지 아내를 뒤따라갔다.


“저기.. 아까 지하철에서부터 봤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 셔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언제 밥 한 번 먹을 수 있을까요? 제가 살게요.”


아내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고, 그 순간 번호를 물어보면 왠지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지갑에 있던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날 이후 핸드폰을 자꾸 쳐다봤지만 연락이 없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 남자친구가 있나 보다.‘ 생각할 때 즈음 문자가 왔다.


지난번에 번호 주셨던 사람인데요~ 만나서 밥 먹을까요?


당시 아내와 나는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살고 있었고 만난 지 이틀 만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나 가치관이 잘 맞았다. 우린 둘 다 가진 게 없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있었고, 함께 있으면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고 만난 지 1년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우리 둘 다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보증금 1천에 월세 60만 원짜리 신혼집을 얻어 살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아내는 군것질을 좋아해서 가끔 집에 오는 길에 과자를 사달라고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편의점에 들러서 사달라고 한 과자와 함께, 아내가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를 잔뜩 담았다. 비닐 봉지에 잔뜩 담긴 과자를 보여주면 아내는 어린애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곤 했다.


‘아, 편의점 과자 봉지 하나에도 이렇게 행복해하는 아내가 내 아내라는게 참 감사하다 ‘


함께 지내는 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영업을 하러 다니기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아내는 늘 나를 믿고 지지해 주었다. 그런 아내가 내 옆에서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알던 그 사람, 나를 보여 웃어주던 아내는 이 세상에 없다. 아내는 나를 자기 삶에서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내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자꾸만 ‘왜’를 떠올렸지만, 왜라고 물을 수록 더 괴로울 뿐이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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