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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루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곤 했고,
모든 걸 계획대로 차근차근 해나가기보다는 우당탕탕 해치우는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루틴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제는 안정감을 느끼고, 반복의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이제 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지키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루틴(routine)이란?
영어 단어인 루틴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의 틀에 박힌 일', '특정 작업을 실행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련의 행동이나 절차'이다. 예를 들면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반복하는 훈련,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공부 습관 형성을 위해 아침부터 잠이 들 때까지 정해진 시간만큼 공부하는 것 등이 루틴이 될 수 있다.
루틴은 단순히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 규칙적인 혹은 틀에 짜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반복을 통해 습관으로 형성되면 그때부터 삶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은 이를테면 영어 공부를 한다거나, 건강한 몸을 만든다거나, 자격증을 취득한다거나 하는 목표달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루틴은 성취를 위한 수단만이 아닌,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유익이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익숙한 어떤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도 루틴이 가져다 주는 좋은 효과이다. 나의 경우에는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감이 올라올 때마다, 베이스가 왕- 왕- 울리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러닝을 한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 듣고 싶은 음악을 정해서 듣거나, 울적할 때 특정한 장소를 찾거나 하는 등의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왜 루틴을 좋아하게 되었나
구글에 '루틴' 두 글자만 검색을 해도 루틴에 관한 수많은 글과 자기 개발서가 쏟아진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누군가 루틴이 좋다고 하기에, 또는 자기계발을 위해 루틴을 만들어 보기로 다짐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첫 직장을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교회에서 5년 정도 사역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사회로 뛰어 들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괴팍하기로 악명이 높은 한 교육본부에 어떤 전무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이 나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이 30이 넘어서, 해놓은 게 없네? 놀았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황당하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교회 사역을 때려치우고 보험회사에 들어갔으니, 거기선 내 경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때 나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회초년생일 뿐이었다.
"하.. 근데 결혼도 하고 애도 키워야 하는데, 연봉이 너무 적네. 어떻게 해야 네 연봉을 올려줄 수 있으려나"
그 전무님은 비록 괴팍하고 직설적이긴 해도,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따듯한 분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동료 사역자, 선배 목사들조차도 내 살 길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이 분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그분은 업계 경력이 모자란 내가 이 바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금융권에서 통용되고 특히 보험사에서 우대해 주는 자격증이 있는데 AFPK/CFP라는 개인재무설계자격증이다. 그 양반은 내게 CFP자격 취득을 목표로 퇴근 후에 잠도 자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했다.
AFPK자격을 우선 취득해야, CFP시험 응시를 할 수가 있는데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과목 수가 많고 외워야 할 내용이 방대해서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시험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어떤 위기의식이 있었고, 괴팍한 그 전무님이 나를 위해 건네는 따듯한 진심에 감동을 느껴 시험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남들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해서 공부를 했고, 퇴근 이후에도 사무실에 남아 2~3시간 공부를 한 뒤 집에 돌아갔다. 당시 근무하던 부서가 교육담당부서라, 교육생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 대체로 몇 개씩 남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전무님은 내가 저녁에 그 도시락을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남는 도시락을 따로 챙겨놓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시험 보기 일주일 전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며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6개월 정도 공부를 해서 AFPK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오랜만에 시험응시를 하며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다.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다거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억지로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고, 또 무언가에 이렇게 몰입하고 그걸 통해 성장해 나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다.
공부하는 시간 동안에 나는 유튜브에 'Study with me'라는 형식의 영상 콘텐츠를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영상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의사, 수험생, 직장인 혹은 한국사람, 일본사람, 미국에 사는 유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2~3시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업로드를 해주었다. 그 영상을 틀어 놓고 있으면, 자기 인생을 발전시키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누군가와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열심히 해보자!’ 하는 의욕이 솟았다.
루틴과 거리가 멀던 나는, 그렇게 점점 루틴을 사랑하게 되었다.
루틴이 내게 주는 것은, 전에 없던 새로움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루틴은 무언가를 반복하며 일상을 예상가능하게 하고, 나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규칙적인 틀을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루틴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만이 새로움은 아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성장'을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단순히 낯선 곳을 방문하는 것,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 낯선 경험을 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흥미는 금방 휘발된다. 그 낯설음이 편안함을 지나 익숙함이 되는 순간, 그게 무엇이든 새로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루틴으로 습관이 만들어지고, 그 습관을 통해 내가 원하는 어떤 목표를 이루면 인생에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는 또한 나의 삶에 '성장', '성취', '성숙'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루틴이 인생에서 만들어 내는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풍성해진다.
20대에서 30대가 될 때 나는 다짐했었다.
30대에는 흘러가는대로 사는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기로,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로.
그래서 나는 볼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곧 40대를 앞두고 있는 요즘 그런 다짐을 해본다.
'이제는 쌓아나가야 할 때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반복하고 숙달하면서 계속 성장해나가자.
나의 30대가 도전의 시간이었다면, 나의 40대는 성취의 시간이 될 것이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나의 성취는 풍성한 새로움과 즐거움을 내게 안겨줄 것이다.
With Routin! New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