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각자의 패턴이 있다: 습관 설계의 시작
주마등(走馬燈): 생존을 위한 초고속 무의식 검색
사람이 죽기 직전, 살아온 인생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주마등' 현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낭만적인 회상이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주마등은 뇌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기억장치(해마)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모든 무의식의 기억을 순식간에 뒤져보는 처절한 생존 본능의 발로라고 한다.
결재판이 나를 향해 슬로우 비디오로 날라 오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그 결재판을 피해서 책상을 뛰어넘고, 이 결재판을 내게 던진 사장에게 달려 들어서 멱살을 잡아 바닥에 메치는 방법이 시뮬레이션되어 홍콩 르와르 영화 장면처럼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사장을 메다꽂는 데까지는 시뮬레이션이 되는데 그다음 수습은 어떻게 할지 진행되지 않아서 3번째 시뮬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현재의 시뮬레이션은 수습책이 없다는 것을. 막다른 방식이었다. 그러자 화면 위쪽에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던 장면이 마치 필름처럼 하나씩 지나가고 있었다.
주마등이었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사장이 목표로 한 얼굴로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서류와 결재판을 잘 정리해서 다시 사장 앞에 올려놓고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나는 주마등을 죽을 고비가 아닌 이 상황에서 경험하면서 사람들에게 주마등을 설명하는 행운을 얻었다.
결재판이 날아오는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죽는 것과 같은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나 보다.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모든 시뮬레이션을 내려놓고, 회사에서 잘리지 않도록 바짝 엎드렸었다.
이 현상은 우리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의 뇌 속에는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순간에 나를 살리기 위해 작동하는 거대한 '자동화 시스템(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가 심장을 뛰게 하듯, 이 무의식의 시스템은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빙산의 일각: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이 마음의 구조를 설명할 때 가장 적절한 비유는 '빙산'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5%의 작은 얼음 조각이 우리가 매일 고민하고 판단하는 '의식'의 영역이라면, 주마등처럼 깊은 물아래 잠겨 보이지 않는 거대한 95%의 몸통은 '무의식(잠재의식)'의 영역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동물은 주로 본능이라는 무의식의 영역과 현재의 자극에 반응한다. 반면 인간은 드러난 5%의 의식(생각의 깊이)을 사용하여, 보이지 않는 95%의 무의식 영역을 설계하고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나를 다루는 기술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5%의 의식적인 선장이 키를 잡고, 거대한 95%의 배(무의식)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그 좋은 행동을 무의식의 영역(습관)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내면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짜 안정감의 위험
하지만 요즘은 이 선장이 종종 키를 놓치고 있다. 힘들 때 내면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정비하기보다, 스마트폰이라는 외부 자극에서 즉각적인 위로를 찾는다. 최근 MZ 세대를 중심으로 AI 챗봇과의 감정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AI 챗봇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청소년들의 문제가 불거지며 안전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AI 챗봇이 자살이나 자해 방법 같은 유해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제공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맹목적인 공감으로 청소년들의 고립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AI 챗봇에 정서적으로 깊이 의존하던 청소년이 현실과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비극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AI가 주는 달콤하고 무조건적인 긍정은 '가짜 안정감'이다. 진정한 회복은 외부의 알고리즘이 아닌, 내가 나를 관찰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에서 온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에 부딪혔을 때, 바닥을 치고 다시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말한다. 건강한 신체 활동이 뇌를 깨우고, 그 깨어난 뇌가 다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순환 고리를 회복해야 한다.
나를 프로그래밍하는 4단계 프로세스
5%의 의식으로 95%의 무의식을 설계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제안한다.
1. 나를 관찰한다 : 솔로몬의 역설과 메타인지
나를 관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솔로몬의 역설(Solomon's Paradox)'이라고 부른다. 지혜의 왕 솔로몬조차 남의 문제에는 기막힌 해법을 내놓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엉망으로 처리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 몰입'에 빠져 있어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메타인지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이를 실천하는 가장 강력하고 쉬운 기술은 '거리 두기(Self-Distancing)'이다.
벽에 붙은 파리 기법(Fly on the Wall):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를 1인칭("나 지금 화났어")이 아닌, 벽에 붙은 파리처럼 제삼자의 시선("저기 있는 홍길동이 지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고 있구나")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3인칭 대화법: 속으로 "나 왜 이러지?"라고 묻는 대신, "홍길동, 너 지금 왜 불안해하는 거야?"**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말을 건넨다. (홍길동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된다.)
마음 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 명상은 뇌를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듯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다. 이는 자극(스트레스)과 반응(화) 사이에 '생각할 틈'을 만들어 주어, 무의식적인 습관적 반응을 멈추게 한다.
놀랍게도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주어를 '나'에서 '제삼자(이름)'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뇌의 감정 중추가 진정되고 이성적 판단력이 회복된다. 관찰은 거창한 분석이 아니라, 나를 '남 보듯' 바라보는 이 작은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
2. 잠재의식을 프로그래밍한다 (Programming)
관찰을 통해 내 패턴을 알았다면, 이제 뇌를 속여야 한다. 운동이나 새로운 행동을 '고통'으로 인식하면 잠재의식은 저항한다. 이 저항을 우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상'이다.
지금 당장 신 김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해보라.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일 것이다. 신 김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뇌는 상상만으로도 실제와 똑같은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이 원리를 이용해야 한다. "운동해야 하는데 귀찮아"라는 고통 대신, "운동하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의 느낌"이나 "샤워할 때의 상쾌함"을 생생하게 상상하며 뇌에 입력한다.
긍정적인 상상이 무의식을 속이는 가장 강력한 프로그래밍이다.
3. 루틴을 정한다 (Setting Routine)
구체적인 행동, 즉 루틴을 설계할 때 핵심은 **'기존 습관(Trigger) 뒤에 사소한 행동(Action)을 붙이는 것'**이다. 거창하게 "매일 1시간 러닝"이라고 정하면 뇌는 겁을 먹고 도망간다.
대신 이렇게 정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양말을 벗으면(기존 습관), 바로 스쿼트 5개를 한다(새로운 루틴)." "아침에 커피 머신 버튼을 누르면(기존 습관), 물 한 컵을 마신다(새로운 루틴)."
너무 사소해서 실패하기조차 민망한 행동을 기존의 생활 패턴 뒤에 접착제처럼 붙여야 한다. 뇌가 "이 정도는 뭐, 일도 아니지"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루틴 정착의 비밀이다.
무의식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루틴과 습관을 구분해야 한다.
루틴(Routine):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단계다. 하기 싫은 마음(저항)을 이겨내고 "해야지"라고 결심하며 에너지를 쓰는 훈련 과정이다.
습관(Habit): 무의식적인 자동 반사다. 뇌의 기저핵이 관장하며, 애쓰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상태다.
우리의 목표는 루틴이라는 의식적인 닻을 내려, 결국 습관이라는 무의식의 항해로 나아가는 것이다.
4. 작심삼일을 반복한다 (Repeat)
우리는 작심삼일을 실패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3일 간격의 인터벌 트레이닝'이라 부른다. 뇌의 입장에서는 과거 습관이 에너지를 덜 쓰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뇌는 끊임없이 과거 습관으로 돌아가려 한다.
3일 만에 무너지는 것은 의지박약이 아니라 뇌의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다. 무너졌을 때 자책하는 대신, 이때는 3인칭 대화법으로 "오, 뇌가 정상 작동 중이군. 홍길동, 나랑 다시 시작해 볼까?"라고 쿨하게 넘기자.
이 '다시 돌아오는 탄력성'이야말로 우리가 키워야 할 진짜 회복력이다.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
우리는 매번 "루틴 만들기에 실패했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이것은 뇌가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루틴을 이미 성공시켰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수많은 루틴을 성공시켜 습관으로 만들어왔다. 뇌는 에너지 효율을 위해 그 행동을 '관리 목록'에서 지워버리고 무의식(자동 주행)으로 넘겨버린다.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거나, 신발 끈을 묶는 행위를 할 때 우리는 "해냈다!"라고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너무나 당연한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 끙끙대고 있는 몇 가지 행동들만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실패의 기억'으로 괴롭힌다. 즉, 우리는 성공한 수많은 습관은 잊어버린 채, 아직 정착되지 않은 몇 가지 시도만 기억하며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우리의 몸은 이미 수많은 루틴을 성공적으로 습관화해 냈다. 지금 힘든 그 루틴도 곧 뇌의 기억에서 사라져, 당신을 지키는 든든한 무의식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저 스스로를 믿고, 다시 움직이면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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