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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향하는 발자국

마지막 방어선에서 그날의 포화_03

by NKDBer

첫 전투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우리 중대는 깊은 산중에 방어진을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틀 밤낮을 행군했다. 그곳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게 되었고, 소총 소리와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부상당한 전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피투성이의 그들을 지혈하며 위생병으로서의 역할이 단순한 치료를 넘어,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을 붙잡아 두는 일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중공군의 끊임없는 공격에 우리는 하루 종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매일 부상자들을 응급처치하며 후방으로 보낼 때 그들의 안도한 얼굴이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모든 전우를 구할 수는 없었고, 내 손을 잡고 눈을 감는 이들을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


1953년 여름, 나는 금화 원남지구에 배치되어 하루하루 긴장 속에 지냈다. 전쟁이 곧 끝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더위 속에서 전선을 지키며 참호를 지켰다. 우리 고지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중공군의 끊임 없는 공격을 받았다. 우리는 능선마다 포진해 포병 지원으로 진격을 막아냈지만, 중공군은 계곡을 따라 후방으로 깊숙이 침투해 우리를 포위했다.

7월 13일 밤, 계곡 아래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무전이 끊기며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외부의 지원 없이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엄습했다. 날이 밝자 중공군 통역병이 참호 근처에서 투항을 권유했지만, 전우들은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무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위생병인 나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준비했지만, 상황은 절망적으로 악화되었다.


오후 5시쯤, 참호에 집중 포격이 쏟아졌고, 나는 흙더미가 무너지는 소리에 몸을 웅크렸다. 포탄이 참호를 직격하며 허리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고,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참호에 깔린 채로 고통을 참으며 구원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중공군 병사들이 참호에 들어와 부상당한 나를 끌어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그들은 나를 포로로 질질 끌고 갔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적의 손에 잡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참호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나는 중공군들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다.


3.포로부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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