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꽃처럼 피어 있다
며칠 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새벽부터 맑아진 공기와 밝은 햇살이 기분 좋게 출발 시간을 감싼다.
기다리던 햇살 아래, 어르신들과 함께 ‘플라워 교육원’을 찾는 발걸음이 가볍다.
실내의 향긋한 꽃내음이 어르신들을 반갑게 맞는다.
어르신들은 “꽃들이 참 예쁘다”며 꽃처럼 웃으신다. 웃음소리가 꽃빛보다 더 환하다.
오늘의 체험은 ‘화환', 리스 만들기이다.
강사님의 설명 뒤 초록 넝쿨을 둥글게 고정한 틀에 꽃 모양을 가는 철사로 묶는다.
둥근 원 안에 작은 꽃들을 꽂아 넣을 때마다 어르신들의 얼굴이 꽃잎이 된다.
“내 인생도 이렇게 둥글둥글했음 얼마나 좋아. 모난 데 없고...”
꽃잎화님의 말씀이 여운처럼 마음에 남는다.
화환은 오랜 세월을 돌아온 인생의 모습을 닮았다.
어르신들의 개성과 모습처럼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다.
한참의 웃음과 이야기 속에 완성된 화환을 테이블마다 놓는다.
화환이 모여 있으니, 많은 사연이 한 자리에 피어난 듯하다.
어르신들은 화환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머리에 얹는다.
고운정님이 시집가던 날의 족두리 이후 이런 건 처음이시라고하자 모두 얼굴빛이 발그레해진다.
새색시처럼 곱다.
"첫사랑이었어?"
한 분이 짓궂게 묻는다.
"첫날밤이긴 했지만 첫사랑은 아니었지."
한꺼번에 눈길이 쏠린다. 놀란 표정이다.
"동네 오빠를 좋아했어. 그런데 도시로 훌쩍 떠나버리데. 야반도주할 뻔했지만 겁나서 못 그랬어. 하아, 60년도 더 넘은 얘기를 지금서 하네. 호호호."
수줍은 웃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연속극이네, 연속극여. 그 뒤론 못 봤남?"
"못 봤지."
"못 봤으니 꽃처럼 그리운 거여. 다시 봤음 기억에 안 남어."
나도 귀를 기울이며 주고받으시는 이야기를 듣는다. 명언이시다.
"선생님, 우리 사진 찍어 주세요!"
새치름한 표정으로 엄지와 검지를 겹쳐 사랑을 표현한다.
활짝 핀 웃음이 각양각색으로 만발한 꽃처럼 피어난다.
"이제 그만 떠들어. 떠들었더니 배고파."
버럭순님의 배 시계는 정확하다.
점심은, ‘꽃잎 비빔밥’.
노랑, 분홍, 보라, 하얀 꽃잎들이 밥 위에 곱게 펼쳐진다. 식탁은 봄의 한가운데이다.
"요 이쁜 걸 어찌 먹어."
먹기가 아깝다고 하시던 어르신들은 식욕이 돋는지 이내 젓가락을 든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에, 이게 진짜 꽃밥이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그 웃음이 꽃잎보다 더 향기롭다.
다양한 야채 요리는 싱싱하며 맛깔스럽고, 화환 겹치듯 쌓아놓은 가지부침도 맛있다.
고구마, 떡, 과자, 포도, 방울토마토...
풍성한 식탁에 계속 웃음이 이어진다.
창가에 햇살이 스며들고, 산뜻한 바람이 솔금솔금 불어온다.
모처럼의 비 갠 날, 어르신들의 얼굴은 햇살이다.
오늘의 체험은 꽃을 만지고 밥을 먹는 시간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도 꽃처럼 피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돌아오면서 어르신들은 손에 든 화환을 보며 즐겁게 말씀하신다.
“이 꽃들은 오늘의 내 마음이야."
"꽃처럼 젊어진 것 같아."
"오늘이 최고의 날, 최고로 젊은 날이다!"
"네, 가장 젊은 날입니다."
나는 큰소리로 맞장구친다.
비 갠 뒤의 햇살,
향긋한 꽃잎 비빔밥,
마음빛으로 색색 꾸며진 화환,
그리고 더없이 맑고 밝은 어르신들의 웃음.
따스했던 하루가 어르신들의 마음에 윤슬처럼 잔잔하게 스며든 듯하다.
오늘의 모든 것을 선명한 사진처럼 마음에 꾹꾹 담는다.
어르신들의 이런 행복한 순간순간들이 마음의 꽃으로 피어나고,
남은 여정들을 격려하며 내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리라 굳게 믿는다.